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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저널] 하우스콘서트와 원먼스 페스티벌, 자생력 있는 문화를 위하여
음악저널 2017. 09
​32~37쪽, NOW AND FUTURE

[하우스콘서트와 원먼스 페스티벌, 자생력 있는 문화를 위하여]
 
글 나성인 사진제공 더하우스콘서트
 

우리나라는 지난 50여 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내 선진국 대열을 넘보게 되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제12대 경제대국으로의 도약은 분명 인상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 시민들의 노력과 열정은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과가 반드시 나라의 기본기를 확인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가 여전히 기본에 약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뼈아픈 사건이었다. 기본기 없이 몸에 밴 임기응변과 부정행위가 겹쳐져 이 불행한 사건을 낳았다. 이것은
기본을 무시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마치 벼락치기로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과도 같았다. 좋은 성적과는 별개로, 벼락치기는 좋은 공부 습관이 아니다. 단기간의 목표달성에 온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이 방식은 목표가 달성되거나 사라지는 순간 그 추동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과정보다는 성과, 기본기보다는 요령을 앞세우는 천박함이 여기에서 생겨난다. ‘벼락치기’로 우리사회는 대략 80점 정도의 성적은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0점에서 80점까지 가는 것보다 80점에서 90점으로 가는 것이 훨씬 어렵다. 80점에서 90점을 가는 그 길이 곧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이다. 그런데 선진국은 단지 경제력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이란 말 그대로 ‘앞서 나가는’ 면을 보여주는 나라이다. 엄청난 속도로 무엇인가를 학습하는(혹은 카피하는)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앞서 갈 것인가. 여기에는 문화의 힘, 특히 자생적인 문화의 힘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벼락치기로 탄탄한 문화적 토양을 가꿀 수 있겠는가? 벼락치기로 문화를 가꾼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문화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성황리에 개최된 원먼스 페스티벌의 기획자인 더 하우스콘서트 박창수 대표를 만났다. 하우스콘서트와 원먼스 페스티벌은 우리 공연계의 현 시점(나우)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퓨쳐)을 보여준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터뷰하는 내내 박창수 대표는 기본을 지키고자 하는 한결같음과 비록 더디지만 문화 생태계 자체를 변화시킴으로서 문화자생력을 가꿔나가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80점짜리 우리문화를 90점으로 올려놓는 미덕이 바로 그러한 태도 아닐까. 하우스콘서트나 원먼스 페스티벌이 보여주는 기획의 참신성이나 이슈 메이커로서의 자질 또한 충분한 기사의 소재가 되겠으나 본편에서는 그의 미래지향적인 운동성에 중점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박창수 대표가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연주자들의 기량이 귀국 후 급속히 하락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연주를 많이 하지 못하니 연주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공연장이 없어서인가 알아보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국내 공연장 공급은 이미 과잉이라 할 만 하다. 500석 이상의 공연장만 전국에 400 여개가 넘는다. 문제는 공연장들의 연 가동률이었는데 평균 3%, 즉 연 10회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연주자와 공연장이 넘쳐 나는데도 이 같은 인프라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창수 대표의 고민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박창수 대표는 음악인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던졌다. 공연장이 이렇게 비어 있는데 공연장에서 왜 공연을 하지 않는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가장 먼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들은 당연히 음악인들이다. 하지만 많은 음악인들이 여전히 수동적인 태도로 머물러 있다. 누군가 판을 만들어서 ‘모셔가기’를 바라고 ‘불러줄’때까지 기다린다. 이미 ‘놀 수 있는’ 터가 널려 있는데 개발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박창수 대표는 관객을 지속적으로 만나기 위한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혹은 현재 우리나라 공연장의 현실을 제대로 알아보고자 발로 뛴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젊은 음악가들, 힘들죠. 갈 데 없어 보이고 막막한 거는 이해하는데…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먼저 마음을 모아야 해요. 그래야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을 하고 살 길도 생기고 그러지요. 그런데 판을 벌려 놓고 한 번 모여보자 해도 안 모여요. 조금만 손해 본다 싶으면 안 하려고 해요. 문제는 해결하고 싶지만 희생은 하기 싫다. 이것도 자립적이지 못한 태도에요.”
음악가들이 공연장의 현실을 잘 모르는 것처럼 공연장 관계자들도 음악인들의 현실을 잘 모른다. 박창수 대표는 ‘찾아가는 음악회’의 사례로 이를 설명했다. 공연장 측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할 테니 참여 연주 팀을 기악∙성악∙타악에서 1/3씩 뽑아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지시다. 국내 연주자들의 실제 비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시이고 순수 성악 및 타악만으로 앙상블을 구성할 때의 연주상의 난점을 전혀 모르고 내린 지시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탁상공론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무사안일주의 때문이다.
그런데 박창수 대표는 이러한 문제가 비단 음악인들이나 공연장 관계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이 전체 우리나라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어도 자칫 책임을 떠안을까봐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비판은 하지만 대안제시와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우리 음악 생태계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의 차원으로 하우스콘서트를 시작했다. 관객과 연주자 사이에 벽을 없애고 서로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수익을 내지 않는 공연으로 기획한 것도 하우스콘서트가 온전한 문화예술운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박창수 대표는 하우스콘서트의 비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화를 진정으로 아끼고 누리는 사람들은 어차피 소수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소수가 지향하는 문화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하우스콘서트는 소수가 향유하는 문화의 수준을 높여서 의식 있는 소수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들을 통해 더 수준 높은 문화의식이 확산되는 것이지요.”
‘소수’의 힘은 막강하다. 문화의 가치와 잠재력을 알아볼 줄 알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그동안 하우스콘서트의 무대에 숱한 예비 스타들을 세워 왔다. 그들 대부분 아직 무명인 학창 시절에 하우스콘서트에서 연주했다. 그들 가운데는 김선욱, 김태형, 선우예권, 조성진, 신박두오, 노부스 콰르텟 등 현재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확보한 젊은 음악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좋은 연주자들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런 관심이 왜 클래식 저변으로 확대되지 않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제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내 안목을 안 믿는 거죠. 기업들, 후원자들 다 유명한 사람들을 불러오려고 하지 유명해질 사람을 불러오려고 하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음악을 듣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해외의 평가, 무슨 콩쿠르 우승이라든지 이런 것에 연연하게 되죠. 그것도 일종의 사대주의에요. 내가 보는 안목이 없으니 어떻게 즐기겠어요? 그저 유명하다 하니까 나도 한 번 들어보자, 이런거죠. 그런데 반대로 하우스콘서트에서는 뛰어난 연주자를 유명해지기 전에 믿어줘요. 그러면 그 연주자는 이제 마음을 주기 시작해요. 비싼 돈 주고 유명한 연주자 불러오는 게 아니에요. 마음이 먼저 동해서 참여하고 나누려는 거지요.”
 
가치를 위해 허물어야 한다
2002년 박창수 대표의 연희동 자택에서 시작된 하우스콘서트는 이와 같은 참여와 나눔의 철학을 15년간 가꿔왔다. 연주자와 관객 사이에 벽을 없애고 3,500여 개의 공연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 2012년 ‘프리, 뮤직 페스티벌’을 열면서 일종의 ‘지각변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원먼스 페스티벌의 시초였다. 일주일간 100회의 공연, 전국 23개의 공연장에서 158명의 예술가들이 8,800여 명의 관객을 만난 이 사건은 국내 유수의 신문과 매체에 일제히 보도될 만큼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2013년에는 전국 65개의 공연장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각 일제히 공연을 여는 ‘원데이 페스티벌’을 시도했고 2014년에는 국제적으로 확대되어 같은 날 한중일의 94개의 장소에서 일제히 공연을 개최했다. ‘원데이 페스티벌’은 2015년 ‘원먼스 페스티벌’로 다시 확대되었다. 2015년에는 27개국 295개의 공간에서 7월 한 달 동안 432개의 공연을, 2016년에는 28개국 298개의 공간에서 425개의 공연을 개최했고 페이스북 라이브를 도입해 전세계에서 실시간으로 공연을 공유했다. 올해 2017년에도 28개국에서 614개의 공연을 소화한 원먼스 페스티벌은 시간∙공간∙컨텐츠의 제약을 뛰어넘는 ‘일상에 살아 있는 예술(Arts alive)’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참여와 공유를 통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보다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가꾸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먼스 페스티벌은 이미 클래식의 영역을 훌쩍 벗어났다. 원먼스 페스티벌에는 이미 다양한 나라의 전통음악과 대중음악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음악 연주가 아닌 다른 형태의 공연, 이를테면 토크콘서트 등도 포함되어 있다. 박창수 대표는 새로운 것은 영향을 주고 받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문화를 협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백남준 선생이 한국에서 쭉 있었다면 그런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겠어요?” 중요한 것은 공연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박 대표가 ‘프리, 뮤직 페스티벌’ 당시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린 것은 벽 없이 직접 소통하려는 하우스콘서트의 가치를 공연장 환경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음악을 들은 어린 관객은 특히 무대 상황에 동화되면서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듯 느꼈으리라. 기획자로서 박 대표는 참여와 소통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공연 환경을 갖춰 문화생산과 향유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필자는 박창수 대표에게서 진보적인 계몽주의자의 면모와 열혈 낭만주의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칸트가 말한 계몽주의의 모토는 스스로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게으름과 맞서는 것 아니었던가. 박 대표는 우리 공연계를 둘러싼 게으름(그리고 그 게으름이 촉발시킨 무지)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그는 일관성 있게 일상 속의 예술을 부르짖고 있다. 이는 또한 ‘예술은 사회적으로, 사회는 예술적으로’라는 낭만주의의 강령과 강하게 결합된다. 서양 문화가 삼백여 년에 걸쳐 얻어낸 성과를 불과 삼십여 년 만에 얻어내려 한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빈 구멍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박창수 대표는 서양 사람들이 시간차를 두고 추구했던 두 가지 노선을 자기 몸에 함께 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확장성이 있는 프로젝트를 박창수 대표와 두 세 명의 직원들이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일에 마음을 합하여 더 자생력 있는 문화를 가꾸는 기쁨을 함께 누리기를 바란다. 그것이 지금 우리 문화의 현실을 넘어 보다 나은 토대를 이룰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