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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U MUSIC 울림 vol.20] 문화의 지형을 바꾸는 무대들 : 박창수의 하우스콘서트
SNU MUSIC 울림 2017. vol.20
​12~15쪽, 이슈포커스
 
문화의 지형을 바꾸는 무대들
: 박창수의 하우스콘서트

글 신예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음악과 이론-음악학전공 석사)
 
  시작은 '집'이었다. 아무런 음악적 규범이 깃들지 않은 집이라는 열린 공간을 무대로 삼자 모든 것이 엄격하게 조율된 콘서트홀보다 훨씬 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집이 만들어낸 변화는 두 가지였다. 아주 고전적인 콘서트도, 실험적인 음악도, 국악도, 재즈도, 즉흥음악도, 특별히 명명하기 어려운 그 어떤 음악도 모두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자유, 그리고 동시에 일상적인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경험.
 
음악을 일상으로, 일상을 음악으로
  하우스콘서트는 어느덧 500회를 훌쩍 넘어섰다. 단 한 번을 만들기도 어려운 공연을 무려 500회를 넘길 때까지 15년간 해 온 이유는 그 공연들이 쌓이고 쌓여서 언젠가는 음악에 대한 아주 공고한 전제들을 끄트머리부터 부수어가며, 또 단 1%에 불과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문화에 대한 인식을 더 성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주된 모토는 '일상 속에 살아있는 예술'을 만들자는 것. 오랜 시간만큼 공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2002년 연희동 자택을 시작으로 녹음 스튜디오 클래식 뮤테이션, 사진 스튜디오 보다, 녹음 스튜디오 율하우스, 예술가의 집까지 장소를 옮겨가며 콘서트를 만들었고, 올해부터는 목동의 카페 포레스트와 예술가의 집, 성수동의 카페 성수 총 세 곳에서 돌아가며 무대를 꾸리고 있다.
  여러 공간에서 수많은 공연을 만들어왔지만, 하우스콘서트만으로 문화의 판도를 바꾸기에는 불충분했다. 여러 프로젝트가 더해졌다. 더욱 친밀한 교류를 위해 '하우스 토크'로 만남의 형식을 변주했고, 어디선가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페스티벌을 열었다. 초반에는 실험예술의 장이었던 '서울 프리뮤직 페스티벌'이 하우스콘서트 10주년을 맞아 '프리, 뮤직페스티벌'로 바뀌며 음악을 자유롭게 즐기자는 말처럼 읽히더니, 같은 해에는 굳게 닫혀있는 공연장을 찾아가 문을 활짝 열고 무대 위에서 하우스콘서트를 만드는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 작전'으로 영역을 한층 확장했다. 이듬해에는 공간의 제약 없이 하루라는 시간만 정해두고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의 공연을 여는 원데이페스티벌이, 2015년부터는 보다 확장되어 한 달 동안 공연이 열리는 원먼스페스티벌이 시작됐다. 올해 7월에도 대대적인 원먼스페스티벌이 열렸고, 모든 공연이 페이스북 라이브로 생중계됐다. 7월 한 달간 거의 하루종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벤트가 열렸고, 페이스북을 켤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그 광경을 손 안의 스크린에서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사유를 위한 음악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무대를 넓히고, 새로운 공연형식을 본격적으로 만들어가는 하우스콘서트의 이 행보는 박창수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정확한 문제인식에서 비롯됐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문화에서는 "생각하게 만드는 음악"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여러 장르 사이에 위계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천천히 사유하고, 우리의 사고를 바꾸어놓을 수 있을 만한 음악들을 충분히 접하고 그 음악을 어떻게 대할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알지 못해서 접하지조차 못하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창수는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문화만 접하다 보면 사유의 힘이 분명히 줄어든다. 오늘날 여러 사회 문제 중 문화 수준이 낮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의외로 많다. 작은 부분 같지만, 분명히 위험하다."고 말한다.
  사유하게 만드는 음악은 때로 '클래식'이라는 장르로 대변되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왔고, 클래식의 필요성은 오케스트라 전용 홀 건립이나 유명 지휘자, 연주자의 내한을 촉구하는 큼지막한 의견으로 수렴됐다. 하지만 하우스콘서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수석매니저 강선애는 "예술의전당을 애초에 지속해서 찾던 몇천 명의 청중이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음악이 울려퍼지는지 단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그 음악을 들려주고, 음악문화에 존재하는 분명한 격차를 조금이나마 해소해보고 싶다"고 한다. 하우스콘서트의 일원들이 바라는 것은 일상적인 공간이자 포용력 높은 열린 무대에서 훌륭한 연주를 선보이는 하웅스콘서트가 일종의 '중간지대' 역할을 하고, 또 앞으로 생겨날 그런 무대의 롤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하우스콘서트가 필요로 하는 것, 검증인
  무대가 아니었던 곳을 무대로 만들고, 닫힌 공연장의 문을 열고, 연주기회가 부족했던 연주자들을 무대에 세웠지만 문화의 판도가 손쉽게 뒤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하우스콘서트 15년 차, 연주자들의 인식은 많이 달라져 이제는 연주자들이 먼저 하우스콘서트를 찾아오게 되었지만 아직 관객에게는 더 적극적인 변화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회적으로 방문하는 관객들은 결코 적지 않았음에도 음악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더 능동적인 관객이 필요했다. 그래서 박창수는 관객이 그저 이곳에 잠시 다녀간 익명의 청자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 및 다른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일종의 '검증인'이 되기를 바란다. 좋은 연주자를 발견하면 그 연주자가 음악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꾸준한 관객이 되어주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더 나은 음악을 위한 적절한 피드백을 내보일 수 있는 적극적인 관객, 하우스콘서트가 무대 위에서 만나야 할 마지막 주인공이다.
 
문화의 지형을 바꾸는 일
  집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된 기획이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하우스콘서트는 문화의 변화를 기대하며 갖가지 무대들을 꾸리고 있다. 하우스콘서트를 이렇게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힘은 어쩌면 우리가 모두 같은 지면을 딛고 서 있다는 그 평등함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스타 연주자부터 이제 막 첫 무대를 꾸리는 연주자까지 모두가 구분 없이 한 무대에 서고, 한 공간 안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연주자와 관객, 기획자, 스태프 등 모두가 동등한 지면에서 같은 눈높이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 위에서 음악을 만들고 듣는 그 방식과 전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누구 한 명의 몫이 아니다. 더 많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우리가 서로를 듣고, 생각을 나누고, 충동할 수 있는 수많은 지면이 마련되어 있다. 남은 과제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무대를 찾아갈 우리가 한 발짝씩만 더 가까워진다면, 변화는 아주 간단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