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담시 "오적"으로 유명한 김지하씨가 소리꾼과 작가를 만났습니다. 김지하씨가 국창 박녹주 선생(판소리 명창)을 8개월가량 따라다니면서 묻고 들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1.

하루는 선생에게 여쭸어요.

"요즈음(70년대) 가수 중 누가 노래를 제일 못 합니까?"
"어? 이미자."
"이미자? 유명한 가수잖아요?"
"응, 해퍼."
"뭐가요?"
"천정이 없어, 소리에."
"소리에도 천정이 있나요?"
"있지."

소리꾼은 최고로 높은 소리를 지를 때도 한 옥타브 이상은 남겨둬야 한답니다.

"그럼, 누가 노랠 잘 부르나요?"
"문주란이.(허스키목소리로 유명한)"
"왜요?"
"걔는 소리 살림을 잘 해."

소리 살림, 소리 살림이 헤프지 않답니다. 허스키가 특이한 가수예요. 유행가도 그렇지만, 소리의 천정. 소리 살림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박녹주 선생이, 소리를 막 배우기 시작한 조카가 녹음기에 소리를 담아온 것을 들었어요. 듣다가 껄껄 웃으셨어요. 웃는 것도 꼭 소리하는 거 같애, 껄껄껄껄껄껄껄껄....껄..껄..꺼 ㄹ
막 웃으세요. 그래서 내가,
"선생님 그렇게 웃으시다가 소리를 끊었을 때 말입니다..."
"응? 아냐, 난 끊은 적 없어."

소리에는 드러난 소리와 숨은 소리가 있답니다. 물리학, 생물학 모든 차원에는 드러난 질서와 숨은 질서가 있습니다. 이것이 예술에서 표면과 이면, 주제면에서 그래요.
끊어지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앞 소리가 끝나지 않았는데 뒷 소리가 시작되는 것. 소리를 놓았다가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소리를 잡아채서 하는데도 소리가 끊기지 않은 것 같단 말이야, 소리가 아니라 감동이.


#3.

박녹주 선생의 스승이 송만갑 명창이었어요. 송만갑 명창은 제자 수련을 아주 혹독하게 시킨 걸로 유명해요. 송만갑 명창이 박녹주 선생을 데리고 금강산을 오르는데, 앞서서 소리를 던져, 뒤에서 박녹주 선생이 이걸 받아야 해. 안 받아? 아주 혼~나. 할 수 없이 받아야 해. 그냥 올라가도 힘든데 아주 허덕허덕. 박녹주 선생 말씀이, 아이구, 이젠 정말 못 하겠다, 나 죽는다, 완전히 죽음 직전의 상태에 가면은 반드시 허연 풀밭이 있대요. 그러면 여기서 쉬어가자, 그런대요. 그럼 쉬~. 쉬어 간대요.
쉬~  
...이 양반아, 그게 소리여.


나는 거기에다가 안답시고 "공(空)의 텍스트", 허공, 텅 빈 것. 쉬~ 이게 공이구나..
그런데, 쉬~ 하기 전에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쉬~ 의 근본이 소리 아닌가, 이렇게 되물었어요.
이 봐요. 나는 미학을 전문적으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런 나한테,
"예잇, 머저리. 공은, 앞에 있든, 뒤에 있든, 모든 것의 시작이여."
"어찌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람아, 자네는 서양 귀신한테 홀렸어."
나는 논쟁에서 절대로 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며칠이라도 논쟁해서 항복받고야 마는 사람이예요. 뒤에 있어도, 앞에 있어도 시작이다, 어찌 그럴까...
그 때 박녹주 선생한테서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어요.
"자네 한강가에 가봤나?"
"물론이죠."
"한강이 어디로 흐르든가?"
"남한강에서 황해로 흐릅니다."
"예끼, 머저리."

보이는 것만 봤다는 거예요. 한강에는 거꾸로 가는 역류가 있고, 소용돌이 치는 솟구치는 흐름이 있고. 프랑스의 미셸 셰르가 한 이야기도 비슷.. 보이지 않으면 실재가 아니냐 이말이예요. 쉼표가 뒤에 나와도, 쉼표는 그 앞에 소리에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