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딱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찌릿함.”
어렸을 적 합창단 활동을 했을 때의 얘긴데, 이를테면 이렇다.

어떤 화음을 꼬마 합창단의 알토, 메조, 소프라노 파트가 각각
너무나도 절대적이고 완벽한 음을 내는 거다.
각각의 파트가 너무나 완벽한 음을 내고
또 너무나 완벽하게 톤 컬러를 조화시키고 있어
그 화음이 비록 아주 아주 작은 셈여림의 소리일지라도
곧 천장을 뚫어버릴 것 같은 소리.
콧잔등부터 이마까지를 간질이는 소리.
그런 소리를 내가 속한 합창단이 직접 내고 있을 때,
그 때의 찌릿함이란 잊을 수가 없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도무지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던...



하나는 “충격.” (이라고 해야하려나)
작곡을 전공하던 불과 3년 전의 일이지만, 박창수 선생님의 Free Music 연주를 처음 듣던 날이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나는 꼴이 엉망이었고, 기분도 엉망이었던
3박자가 두루두루 잘도 맞는 그런 날로 기억한다.
하지만 선생님 연주를 듣고 나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생님과 짧게나마 즉흥연주를 함께 하고 나서
선생님이 내게 던져주신 충격탄은
“비, 꼴이 엉망, 기분도 엉망” 이라는 3합에서 벗어나
그저 나를 “멍~~” 하게 만들어버렸고
그 이후로 선생님의 연주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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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홍익대학교 근처 작은 지하실에 마련된 공연장인 “바다비” 에
선생님의 연주를 들으러 찾아나섰다.

선생님의 즉흥연주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지하실의 한 클럽.
2시간가량 계속되어진 밴드들의 강력한 사운드.
프리페어드가 가능할까 싶은, 조율도 되지 않은 듯이 보이는 업라이트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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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연주가 괜찮을까’ 라는 우려는
드는 그 즉시, 떨쳐버렸어야 했다.

마치 업라이트 피아노만 다뤄온 것처럼
너무나 태연히 그 친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쏙쏙 뽑아내 연주하고 계신게 아닌가.

‘맞아. 이건 소리였지. 소리 덩어리들.
조그마한 소리 입자를 선생님이 디자인해서 만든 소리 덩어리.‘

그렇게 생각하니,
장소가 어떻건, 악기가 좋건 나쁘건, 선생님 손에 익은 것이던 아니던
그런 조건이나 상황 같은 것이 선생님의 즉흥연주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선생님께는 분명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건,
선율도 화음도 아닌.
그 어떤 것보다도 "소리" 그 자체니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박창수 표 소리"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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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며,
손가락에 테이프를 둘둘 감으시면서
‘이거 참, 챙피하네~’ 라고 멋쩍어 하시던 선생님의 연주는,,,
화려한 인디밴드의 음악 뒤에 이어진
피아노라는 단 하나의 악기로 연주된 소리이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더 강력한, 천장이 곧 뚫릴 것만 같던 것 이었다.

어릴 때 이후로는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던
바로 그 콧잔등을 간질이는 소리.

나는 오늘
그 소리를 들었다.



+ 늘 선생님의 연주에 대한 글은 어렵다.
   섣불리 표현하기도 어렵고
   느낀대로 그대로 표현하자니 그도 어렵지만,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본다. 슬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