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2년 8월 27일 - 국내 첫 ‘하우스 콘서트’박창수씨
  • 등록일2006.01.13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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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하우스 콘서트’박창수씨




공연자는 말한다 "집에서... 연주자 숨결 느끼며... 포도주 한잔... 너무 예쁘잖아요."

관객들은 말한다 "취한듯... 내 영혼을 건드리며... 싱싱한 예술... 몸으로 느꼈어요."








# 창수 생각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아님 실망할까요? 어쨌든 제가 좋아 벌인 일이니 흐뭇합니다. 지난 7월12일 첫 하우스 콘서트에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50여명쯤 왔었지요. 25평 공간이 꽉차더군요. 그렇게 많이 찾아와주리라 생각지 못했기에 몹시도 고마웠습니다. 연령층도 다양했어요. 20대부터 60대까지. 아마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하우스콘서트’라는 음악회가 궁금했을테지요.



‘하우스콘서트’가 뭐냐고요? 말 그대로 집에서 하는 음악회지요. 예술가들의 작업을 거창한 장소가 아닌 제 집에서 좋아하는 이들끼리 나눈다는 데 얼마나 따뜻한지요. 그래서 집의 편안함을 강조하려고 ‘하우스콘서트’로 이름붙인 겁니다.



2주일에 한번씩 열릴 예정인데, 어떤 이들은 매주 하라고 성화니, 이를 어쩌죠? 금요일로 정한 큰 이유는 없고 그저 주5일제 근무가 시행되고 있으니, 주말의 여유를 함께 하고 싶어서일 뿐이에요.



23일 공연 후에는 9월6일 피아니스트 신이경씨가 뒤를 잇고 첼리스트 박정민·채희철, 독일에서 활동하는 섹소폰 연주자 박알프레드, 작곡가 박용실씨 등이 12월27일까지 차례를 기다립니다. 음악친구들이 서로 출연하겠다니, 그저 고맙지요. 앞으로 연주회뿐이 아니고 세미나, 영상음악감상회, 요가 등 다양한 메뉴를 준비할 겁니다.



언제부터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냐고요? 고등학교때부터죠. 집이 주는 편안함과 흐트러짐. 집이라는 삶의 공간에서 연주자의 숨결까지 느끼며 연주를 공유하고, 함께 연주에 대해 이야기하며 포도주 한잔하는 거, 너무 예쁘잖아요.



사실 하우스콘서트를 위해 두달전에 집을 수리했습니다. 1층은 주방과 침실, 2층은 작업실 겸 콘서트 스튜디오로 꾸몄지요. 관객들은 마룻바닥에 편히 앉아서 저와 다른 연주자들이 나누는 즉흥적인 음악의 교감을 바라보거나 제가 작곡했던 곡들을 들으며 1시간 동안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저는 몇 년 사이 작곡보다 즉흥연주(free music)에 심취하면서 ‘자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고, 사람들과 자유를 공유하고 싶어 이런 시도를 하는 겁니다. 놀러오셔서 편하게 즐기세요.

/ 박창수 올림





# ‘창수네’... 즉흥의 현장



사람들은 음악회 30분 전부터 집으로 모여들었다. 현관입구에는 큰 개 레트와 작은 개 시츠가 개집에서 박창수씨가 설치해 준 TV를 시청하고 있다가 “컹컹” 짖거나 꼬리를 흔들며 손님들을 맞는다. 박창수답다. 개에게 TV를 보여주다니.



지난 23일 하우스콘서트에는 35명이 자리했다. 이들은 1층 현관에서 2만원의 입장료를 내고 프로그램을 받은 후 2층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오후 8시15분 박창수씨가 오늘의 공연에 대해 설명했다. 1부는 박창수씨의 즉흥연주에 맞춰 마임이스트 유진규씨가 사유의 동작으로 공간을 채우고, 2부는 유씨의 즉흥에 박씨가 즉흥연주를 보태는 구성. 두 사람은 즉흥의 묘미를 더하기 위해 한번도 연습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씨는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 밑에 드러누웠다 서서히 사지를 일으키며 격렬해지는 피아노 소리에 몸을 실었다. 피아노에 매달리거나 피아노 위에 다리를 걸치며 음악과 만났다. 공연 중간중간 큰 개 레트가 짖는 “컹컹”소리는 하우스콘서트 분위기를 돋우는 효과음 같아 정답기만 했다. 2부에선 유씨가 4인용 탁자크기의 한지를 폈다 접었다, 반복하며 ‘없음과 있음’에 대한 철학을 전했다. 역시 그의 몸은 유연하고도 정확했다. 그의 동작에 따라 관객들의 고개도 함께 움직였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가겠다는 듯.



1시간의 공연이 끝나자 와인파티가 시작됐다. 인터넷 사이트 ‘아이러브스쿨’에서 만났다는 박창수씨의 초등학교 동창생 홍명희씨는 “땀흘리며 콘서트를 이끄는 저력에 놀랐다. ‘창수네 집’에서의 공연이 이렇게 포근할 줄 몰랐다”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일본에서 온 니시카와 레이코(42)는 “지난해 일본에서 박씨의 연주를 들은 후 그의 팬이 됐다. 일부러 찾아와 감상한 마임과 연주의 만남은 하나의 명품이었다”고 했다. 한국마임의 개척자 유진규씨(50)는 “일생 첨으로 즉흥연주에 맞춰 마임을 했다. 공연 초반엔 당황했지만 점점 포근하고 독특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너무 즐겁다”며 와인잔을 기울였다. 무속인 이해경씨는 “영혼을 건드리는 공연이었다. 통조림 음악이 아닌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처럼 싱싱한 예술을 몸으로 느꼈다”고 밝혔다.



이날 관객들은 박창수씨가 준비한 10병의 백·적포도주가 동날 때까지 마시고 과자와 치즈도 몽땅 먹었다. 그들이 깨끗이 비운 와인잔은 음악회의 풍경과 여운까지 알뜰히 담아가겠다는 의지의 풍경이리라. 여름밤 낭만에 젖은 관객들은 유리창 밖 연세대 뒷산에 얹힌 짙은 안개에 기댄 채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취재수첩] “오직 자유를 표현하고자 죽을때까지 실험 되풀이”



박창수씨(38)가 만드는 음악은 응집력과 폭발력의 결정체다. 그렇다고 어렵거나 과격한 곡은 아니다. 악기의 불협화음과 목소리가 어울려 빚어내는 화음은 생소한 곡인데도 분노와 슬픔이 가라앉고 자유와 평화가 한발자국씩 다가오는 듯하다. 오랜 그리움을 안고 지쳐 헤매다 사랑의 품속에 안기듯 그렇게. 도대체 그의 음악이 어떠하기에, 15년 전에 이미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을 순수함과 절실함의 음악으로 표현했다”(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는 평을 받았을까? 지난 7월3일 개설된 박창수씨 홈페이지(www.free-piano.com)를 열고 ‘무제’(1987년), ‘즉흥연주’(2001년) 등을 들어보면 답이 나온다. 잘 들리지도 않는 조용한 목소리에 내성적 성격의 박씨와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은 정열과 자유분방함으로 가득하다.



박씨는 작곡과 뮤직퍼포먼스를 병행하고, 두 작업의 소산물은 즉흥연주와 하우스 콘서트로 이어진다. 작곡은 6살때부터 했다. 피아노를 칠 줄 모르면서도 악보에 음표를 그려가며 동요‘노래소리’를 작곡했다. 피아노는 8세부터 쳤다. 퍼포먼스는 14세에 시작했다. 중학 2년때 12채의 한옥대문에 돼지 피를 묻혀 ‘12’라는 숫자를 쓰고 대문앞 공터에 불을 지펴 제의식을 치르고, 각 집의 대문을 두들긴 후 알몸으로 도망간 게 그의 첫 퍼포먼스였다. 서울예고 졸업후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수석입학했지만 졸업하지 않고 자퇴했다. ‘자유’ 때문이었다.



“20년 전 작곡한 ‘개자식의 꿈’과 ‘인간도 역시 동물이다’ 등을 통해 사회를 고발했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퍼포먼스를 시도했죠. 단지 자유롭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작업입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90년 도쿄 공연 ‘레퀴엠’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무대를 뒤덮는 하얀 대형 천속에서 25분 동안 피아노를 쳤는데, 인간의 극한상황을 통해 자유를 강조하고 싶던 그는 경악할 만한 작업을 시도했다. 두 손에 돌을 쥔 채 손을 각각 묶고, 눈을 가리고, 목구멍 깊숙이 핀마이크를 꽂았다. 극한의 불편함속에서 내는 숨소리와 주먹상태로 두들기는 피아노 소리를 상상해보라. 연주가 끝나고 하얀 천이 걷혀지자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작곡이든 퍼포먼스든, 학습이 아닌 체득의 결과로 이룬 작업이어서 자랑스럽습니다.마침표를 언제 찍겠다는 계획은 없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실험을 되풀이하겠지요”. 완성의 마침표조차 자유인 박창수에겐 구속일 뿐이다.





/글=유인화기자 rhew@kyunghyang.com | 사진=정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