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2년 11월 13일 - 실내악 향기 거실 가득
  • 등록일2006.01.19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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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콘서트" 잔잔한 유행

실내악 향기 거실 가득






지난 8일 오후 8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단독주택. 작곡가 피아니스트 박창수(38, www.free-piano.com)씨의 집에서 11회째를 맞는 ‘하우스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 전부터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난 7월부터 매달 둘째 넷째 금요일 저녁에 열고 있는 ‘집들이 음악회’다. 지금까지 한 번 이상 다녀간 회원들이 2백여명이 넘건만 이날은 추운 날씨에다 코리안시리즈 5차전 때문인지 평소보다 적게 모였고 차가 막혀 늦게 도착한 사람도 몇몇 있었다. 무작정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서 음악회가 끝난 후에 하기로 했던 와인 파티를 미리 앞당겼다. 와인을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니 서먹서먹한 분위기도 가셨다.



“어떻게 알고 찾아 오셨어요? 음악회를 할 때마다 참 궁금했어요” “친구 소개로 처음 왔습니다.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다니 벌써부터 흥분이 되네요.”



공연은 30분 후에야 시작됐다. 클라리네티스트 계희정씨와 피아니스트 현영주씨가 루토스와브스키의 "댄스 프렐류드", 하인리히 수터마이스터의 "무반주 클라리넷을 위한 카프리치오"에 이어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 f단조"를 들려주면서 사이사이에 계씨가 직접 해설을 곁들였다. 마루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 음악을 듣는 것이 약간 불편한 자세였지만 연주자가 숨쉬는 소리까지 바로 코앞에서 들을 수 있어 클라리넷의 맑은 소리에 귀가 뻥 뚫리는 듯했다. 브람스에선 전날 리허설 때 공연 장소에 비해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가 너무 크고 잔향이 길어 1악장을 생략하기로 했는데 연주가 끝난 후 김홍진(29.웹디자이너)씨의 요청으로 앞부분을 들려줬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모두들 자리를 뜨지 않고 치즈와 크래커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면서 연주자와 함께 담소를 나누기 바빴다. 클라리네티스트 계희정씨는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이나 프랑스 파리에선 거실에서 신작이 초연되는 등 살롱문화의 전성기였다"며 "실내악이란 원래 이런 좁은 공간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라고 말했다.



집주인 박씨는 하우스 콘서트를 위해 올 봄 2층 양옥집을 수리했다. 1층은 주방과 침실, 2층은 작업실 겸 서재를 원룸으로 터서 40명까지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엔 박씨가 자신의 발표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연주자.관객의 반응이 좋아 연주자 겸 기획자로 나섰다. 지금까지 피아니스트 임미정, 마임이스트 유진규, 기타리스트 이병우, 오보이스트 손형원, 타악기 주자 김대환, 색소폰 주자 강태환씨 등이 무대에 섰다.



"서울예고 다닐 때 친구 집에 몰려다니면서 연습하던 기억이 새롭군요. 그때 아이디어가 떠오른 겁니다. 티켓은 2만원이지만 와인 준비하고 연주자 교통비로 쓰면 모자라요."



외국에서는 하우스 콘서트가 보편화돼 있다. 국내에선 올 봄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이 한남동 자택 거실을 개조한 후 하우스 콘서트를 연 바 있다. 최근엔 울산에 사는 한 소설가가 박씨에게 하우스 콘서트 준비를 위해 조언을 구했고, 타악기 주자 김대환씨도 평창동으로 이사하면서 거실을 음악회 공간으로 리모델링 할 계획이다. 점점 각박해지는 도시 생활에서 연주자와 청중이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바로 이 점이 대형 공연장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서는 누릴 수 없는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이다.



박씨는"아파트는 소음 문제 때문에 저녁 시간엔 곤란하지만 단독 주택이라면 얼마든지 하우스 콘서트가 가능하다"며 "풀뿌리 공연 문화의 싹을 틔우기 위해 하우스 콘서트에 관심있는 연주자들로 네트워크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