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Hundred] 2003년 봄호 - 오감으로 음악을 만나는 곳
  • 등록일2006.01.20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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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concert

오감으로 음악을 만나는 곳 - 하우스 콘서트




그림을 보려면 화랑에, 음악회를 보려면 콘서트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은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조차 알고 있는 평범한 상식에 속한다. 헌데 예술사를 가만 살펴보면, 상식을 뒤집는 파격이야말로 발전을 불러온 동력이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과는 하등 상관없는 여인의 나체를 그린 마네가 그랬고, 변기를 전시한 뒤샹이 그랬듯이. 그런점에서 볼 때 하우스 콘서트는 일종의 스캔들이자 실험이라 할 수 있다. 통상적인 연주회장이 아닌 집이라는 제 3의 공간에서 연출되는 홈메이드콘서트이기 때문이다.





서서히 기지개 켜는 홈메이드 콘서트 붐



‘실험적’ 이라는 면에서 하우스 콘서트는 1960년대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플럭서스(Fluxus)운동과 일면 닮아 있다. 총체 예술을 표방한 플럭서스는 음악과 시각 예술을 다양한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이들은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관객을 자신들의 예술 행위 속에 끌어들였는데, 이런 점은 하우스 콘서트도 마찬가지다. 멀리 있을때보다는 가까이 있을 때 합일이 더 쉬운 법. 괴리감 없이 연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우스 콘서트의 관객들은 그 음악을 자신만의 감동으로 재현해 낸다. ‘하우스’ 라는 좁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공연은 음악을 단지 청각만이 아닌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무대와 객석이 엄연히 분리돼 있는 일반 공연장에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 아닌가.



춘풍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연초록 새싹들처럼 국내에서도 하우스 콘서트 붐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금호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이 하우스 콘서트를 개최한 바 있고,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박창수씨(free-piano.com)도 벌써 스무 번의 하우스 콘서트를 마쳤다. 타악기 주자 김대환씨도 하우스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으며, 지방에서도 움직임이 부산하다. 클래식 기타 연주 모임 같은 아마추어 동호회는 회원의 집이나 학원에서 정기적인 하우스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외국은 우리보다 하우스 콘서트가 활성화하고 있는 상황. 옐로우타일 리코딩이라는 음반회사는 하우스 콘서트를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개인 주택이나 교회에서 콘서트를 개최하곤 한다. 개런티와 상관없이 관객들과 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하는 유명 연주자들도 많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우리 나라 현악 3중주단 안트리오 자매도 매년 맨해튼의 한 가정집에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를 가장 좋아하는 연주회라고 말할 정도.



하지만 하우스 콘서트가 그리 쉽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공연을 하기 위해 집을 개조해야 하는데다, 자신의 집을 낯선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점은 가장 큰 걸림돌. 포트럭(Potluck)파티가 일반화한 외국이라면 모를까, 우리 정서로는 아직 친분이 없는 타인의 집에 관객들이 선뜻 방문한다는 게 겸연쩍은 일일 것이다. 연주자 입장에서 볼때도 그렇다.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돼 있는 기존 공연장과 달리 하우스 콘서트는 관객들이 코앞에까지 근접해 있다. 대형무대에 이미 익숙해진 연주자들로서는 당연히 하우스 콘서트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함께 자신의 음악 얘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다는 것도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



연주자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은 하우스 콘서트가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첫 번째 요인. 연주자의 땀방울이 피아노 건반위로 떨어지는 걸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또 있다. 누워서 들어도 좋고, 벽에 기대서 들어도 되는 하우스 콘서트는 격식에 얽메이지 않는다. 그만큼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관객들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만큼, 대화를 통해 미지의 세상과 접촉할 수 있다는 점은 하우스 콘서트에서만 가능한 일일 게다.





다양한 장르 섭렵하는 박창수의 콘서트



어쩌면 하우스 콘서트는 음악회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대형 공연장이 생기기 전까진 누군가의 거실에서 연주회를 개최했을 테니 말이다. 하우스 콘서트의 뿌리를 굳이 따지자면 유럽에서 성행했던 살롱문화 정도가 아닐까. 당시 예술가의 패트런이었던 귀족들은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집에서 연주 발표회를 열었던 것. 다섯 살 때 이미 작곡을 시작했다는 모차르트도 그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유럽의 여러 궁정과 귀족들의 집으로 연주를 하러 다니곤 했다.



살롱의 기원은 고대 아테네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의 ‘향연’ 에서 볼 수 있듯 살롱은 정신적이고 지적인 놀이 공간이었다. 소크라테스도 아테네의 한 가정집에서 열린 사교 모임에 자주 참가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살롱문화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거쳐 경제적 풍요를 누리던 17,18세기의 프랑스로 건너갔고, 19세기 말 몽마르뜨르의 카바레까지 전통이 이어졌다. 당시 몽마르뜨르는 로트렉, 르느와르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자주 모이던 곳으로, 카바레에서 그들은 그림자 연극을 공연하거나 에릭 사티 같은 작곡가의 연주회를 즐겼다.



살롱이 이렇게 ‘종합 예술적’ 무대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피아니스트 박창수 씨의 하우스 콘서트가 원래의 살롱문화와 가장 닮아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이곳에서는 클래식뿐만 아니라 즉흥연주, 국악과 가요, 요가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지기 때문. 게다가 독립영와도 상영될 예정이다. 다양한 쟝르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건 박창수 씨가 1987년 창단된 ‘한국행위예술협회’ 의 창립 멤버라는 사실과 관련 있지 않을까. 퍼포먼스라는 게 종합 예술적 성격이 짙으니 하는 말이다. 박창수 씨의 하우스 콘서트를 제2의 플럭서스 운동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상찬일까.



소극장이 대중문화가 아닌 순수예술에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현상은, 관객과 밀착하려 한다는 점에서 하우스 콘서트와 궤를 같이 한다.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는 사물놀이, 무용, 클래식 연주 등 대형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공연들이 잇달아 개최됐다. 국립극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명창 안숙선 씨는 계단까지 점령한 관객들과 추임새를 주고받으며 흥겨워 했다고 한다.



소프라노 김영미 씨는 몇 해 전 압구정동의 레스토랑에서 가깝게 지내던 지인들을 초청해 프라이빗 콘서트를 열었다. 이때 그는 평소 무대에서 잘 부르지 않던 애창곡들을 해설까지 곁들여 들려주었는데, 정규 공연장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이 레스토랑에서 소규모 음악회를 열 정도로 크고 작은 프라이빗 콘서트가 자주 열리는 편이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은 내 예술적 재능을 관객들에게 서비스 한다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으리으리한 고연장에서 실적을 남기기 위한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성찬’ 에 싫증난 사람들이 하우스 콘서트라는 ‘별미’ 에 매료되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게다. 딱딱한 긴장과 거북함이 없는 공간, 객석과 무대의 엄격한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하우스 콘서트는 이렇게 색다른 맛으로 마니아를 양산하고 있다.





/글=지근화 기자 | 사진=서헌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