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03년 4월 9일 - 하우스 콘서트, "音~편안하군"
  • 등록일2006.01.20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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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콘서트, "音~편안하군"


집에서 펼치는 두 "작은음악회"

"하우스 콘서트"로 신선한 바람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콘서트홀에서의 연주회를 "속임수"라고 표현했다. "도덕적으로 비열한 짓, 속임수, 솔리스트에게 주어지는 권력과 지배의 위치, 대중에 대한 비굴한 의존"이라고. 그리고 32세에 정상에 오른 신화적 피아니스트는 일체 공개연주회를 중단하고, 스튜디오 작업만 했다.



지난 3일과 4일, 서울 한남동과 연희동 어느 단독주택 거실에서는 연달아 클래식 연주자들의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집에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House Concert). 전문 음악홀이 아닌 일반주택 거실에서 30∼40명의 지인-관객들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소규모 음악회다. 지난해부터 "하우스 콘서트"를 통해 음악계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금호그룹 명예회장 박성용(72)씨의 한남동 자택, 음악인 박창수(39)씨의 연희동 자택 현장을 찾아가 봤다.





신예들의 후원 무대 - 박성용 회장 자택



3일 오후 7시 국내 클래식 마니아이자 기업 메세나의 모델로 손꼽히는 금호그룹 명예회장 박성용씨의 한남동 자택. 지난해 5월 자택을 새로 지으면서 음악홀로 개조된 거실에 놓인 40여개의 의자가 하나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의자가 모두 채워진 건 약속시간보다 반시각 늦은 7시30분경. 이날 연주자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리비아 손과 피아니스트 이혜진이 나와 피아노 앞에 선다. 연주자들이 낮은 조도(照度)에 악보를 끌어당기자 집주인인 박 회장이 직접 일어나 거실의 조명등을 한 단계 높여준다.



이날 리비아 손은 그간 금호문화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아온 1774년산 과다니니 바이올린으로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1시간 가량 계속된 연주회에서 청중들은 연주곡마다 현의 마지막 잔향이 꼬리를 물고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박수를 터뜨리는 주의깊은 감상태도를 보여줬다. 아마도 이 무대가 음악계 인사들을 초청, 작지만 수준높은 신예들의 연주를 듣는 자리로 알려진 덕분일 것이다. 오는 18일 호암아트홀에서 내한독주회를 갖는 피아니스트 헬렌 황도 이에 앞선 15일 박회장댁 거실무대에 선보일 예정. 11일 이유홍(첼리스트)-손열음(피아니스트)의 하우스콘서트에는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하는 뉴욕필의 음악감독 로린 마젤도 손님으로 초청됐다.



소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대개 청중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 준다는 점, 연주 후 제공되는 간단한 식음료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음악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은 하우스 콘서트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박 회장의 하우스 콘서트가 보다 후원의 의미가 깊은, 전문적인 살롱 음악회인 반면 박창수씨의 연희동 집은 일반인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집 - 음악인 박창수씨 집 거실



4일 박씨의 집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가 22회째를 맞았다. 누구나 올 수 있는 집으로 마실 오듯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나 편안함이 음악적 긴장감까지 없앤 건 아니다. 이곳의 하우스콘서트는 입소문이 나면서 음악주자들이 다녀가고 싶어하는 무대가 됐다. 그간 클래식과 프리뮤직(즉흥음악), 마임 같은 퍼포먼스 등을 주로 공연하다가 이날은 최초로 성악무대가 열렸다.



"우리나라에 이런 형식의 음악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바로크시대 등엔 소규모의 살롱음악회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상업화-대형화되면서 이런 자리가 드물지요."



35명의 청중 앞에 서서 성악가 오은경(세종대 교수)씨는 성악곡을 부르기 앞서 차분함과 격정이 섞인 목소리로 해설을 곁들였다. "성악은 특히 가사전달이 중요하다"며 연주곡의 바탕이 된 시를 읊기도 하고,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너무 가까이서 노래를 하니까 더 떨리기도 하고 동시에 집에 있는 듯한 편안함도 느껴졌어요. 내 숨소리와 인상쓰는 것까지 바로 앞에서 보여지니까요"라는 게 오씨의 소감. 이에 대해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걸핏하면 선다는 피아니스트 임미정(울산대교수)씨는 "연주자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깊은 내면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각자 최근의 연습곡과 초연곡들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도 됩니다"고 강조한다.



이날은 연주후 여느때처럼 와인과 치즈, 담소를 나누는 뒤풀이에 이례적으로 베란다에서 바비큐 파티도 벌어졌다. 마니아가 된 일반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해온 이벤트였다.



그간 박씨집을 거쳐간 음악가는 기타리스트 이병우, 피아니스트 신이경, 마임이스트 유진규, 오보이스트 손형원, 색소폰 주자 강태환씨 등이다. 청중으로 다녀간 이가 지난해 7월 100여명에서 현재는 600여명으로 늘어났다.



"지인들보다 모르는 사람들부터 이메일 초청을 시작했다"는 박씨는 "서울예고 시절 친구 집에 몰려다니던 게 하우스콘서트의 시초"란다. "유행이 되기보다 소수라도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게 박씨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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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콘서트를 하는 데 얼마만한 비용이 들까



박 회장 자택의 경우 전문홀 못지 않은 음향장치 설비로 유명하다. 그러나 박씨는 "단독주택의 경우라면 방음장치 외에 크게 특별한 시스템이 필요한 건 아니다"고 설명한다. 박씨는 1층은 주방과 침실로 쓰고, 원래 방 3칸이었던 2층을 원룸으로 터서 25평 정도의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에 피아노와 스피커, 빔 프로젝터만 들였다. 소리의 울림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마룻바닥에 방석을 깔고 집 같은 느낌을 자연스럽게 살렸다. "누워서 보기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연주자들에게 연주료는 얼마나 지불할까. 금호문화재단 씨는 연주자들이 "섭섭해할 정도"라고만 밝혔다. 박창수씨는 9개월간 총 100만원의 적자가 났다고 말했다. 연주자들의 개런티는 입장료(1인당 2만원) 총 수익의 50%. 나머지로 뒤풀이용 와인과 안주를 사고 나면 모자랄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은진기자 jisland@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