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MON TREE] 2003년 7월호 - 문화 신경향 House Concert
- 등록일2006.01.20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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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경향 - House Concert
‘하우스 콘서트’란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 먹고 자고 TV만 보던 집 공간이 근사한 콘서트의 현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우스 콘서트를 직접 개최하고 또 즐기며 사는 사람들에게 듣는 新문화, 혹은 新놀이 체험기
"하우스 콘서트"를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풍류쯤으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물론 이것은, 음악가를 자기 집으로 불러 연주를 청하고, 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독특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던 귀족들의 살롱 문화에 그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허나 오늘날의 하우스 콘서트에는(특히 문화 생활면에서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단순한 살롱 음악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하우스 콘서트를 여는 곳은 두 군데, 하나는 클래식 마니아이자 음악가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알려져 있는 금호그룹 명예회장 박성용 씨네 한남동 집. 작년 5월 집을 새로 지으면서 거실을 음악 홀로 개조, 본격적인 하우스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 열리는 콘서트의 특징은, 연주자들의 수준이 꽤 높다는 것. 박 회장이 후원을 하는 유명 연주가들을 비롯, 방한한 외국 연주자들이 주로 이곳의 주인공이 된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음악 전문가나 정재계 인사들 위주로 초대되는 편. 다녀온 사람 말에 의하면 그다지 캐주얼하지는 않은, 격식 있는 자리에 더 가깝다고 한다.
또 다른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 곳은 연희동이다. 작곡가이자 피아노 즉흥 연주(Free Music)가인 박창수 씨가 자신의 집에서 작년 7월부터 열어온 콘서트가 바로 그 것. 한 달에 두 번, 첫째, 셋째 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 하우스 콘서트에는 30~40여명의 관객이 모여 오붓한 공연을 감상한다. 박창수 씨는 이 하우스 콘서트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단독주택 2층을 하나로 트는 개조 공사를 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이 25평의 공간에서 클래식부터 재즈, 즉흥 연주, 국악, 성악, 마임까지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하우스 콘서트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일반인들.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만 갖고 있으면 누구든지 연령, 성별, 직업 불문하고 모두 관객이 될 수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의 집에서 "개인적인 하우스 콘서트"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여는 사람에 따라, 공연 내용에 따라 그 성격이 약간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공연 문화의 다양성" 또는 "문화적 후원"이라는 다소 전문적인 관점이 있기도 하고, "그냥 모여서 노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성격이든 간에 하우스 콘서트란 문화를 가장 친근하고 밀접하게 체험할 수 있는 형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당신이 귀족이든 아니든 음악을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즐길 준비만 되어 있다면 말이다.
6월 5일, 연희동에서 열린 하우스 콘서트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지만 초여름인지라 날은 아직 밝았다. 빨간 장미 넝쿨이 드리워진 박창수 씨네 2층집 대문엔, "House Concert"라는 팻말이 내걸려 있었다. 관객을 처음 반기는 것은 몸집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 개, 딱 가정집에 초대받아 온 흐뭇한 기분이다.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젊은 남녀로부터 엄마와 딸로 보이는 커플, 나이 지긋하신 50대 아저씨까지 사람들의 면면도 다양하다. 2층 콘서트 장에 올라가기에 앞서, 회비 2만원과 이메일 주소를 적고 공연 리플렛을 받았다.
오늘 콘서트의 주인공은 하모니카 연주자인 이병란. 열네 살 어린 나이이지만 쟁쟁한 수상 경력과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기타리스트 이병우부터 마임이스트 유진규, 오보이스트 손형원 씨들이 거쳐간 이 하우스 콘서트 무대로서는 다소 파격적인 공연인 셈. 어둠이 깔린 8시20분, 2층의 불빛도 조도를 낮추었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이병란이 등장했고, 관객들은 그 바로 앞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연주자 앞에 앉은 사람, 벽에 기대고 앉은 사람, 계단 참에 비스듬히 앉은 사람... 관객들 모습도 제각기 편안하다.
하지만 이병란의 하모니카 연주가 시작되자, 25평의 공간은 진지한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하모니카 소리로 작은 공간이 가득 차 올랐고, 모든 이들은 소리 한 가지에 몰입했다. 연주자의 숨 고르는 소리까지 생생하고, 관객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다 살아 있는 콘서트. 아 이런게 바로 하우스 콘서트구나. 보통 커다란 콘서트 홀에서 느끼는 "한 번 걸러진 듯한 연주"가 아닌 "순도 100%의 진짜 공연"이라는 생각. 개인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곡이라는 "첨밀밀"에서부터 시작된 연주는 클래식과 가곡을 넘나들면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중간중간에 연주자의 곡 해설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섞어가면서 말이다.
1시간여 만에 연주회는 끝났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우스 콘서트의 또 다른 즐거움이 시작됐다. 와인가 치즈가 놓인 탁자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연주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거나, 곡 해석을 부탁하기도 하고, 개인적인 궁금증을 던지기도 했다. 하우스 콘서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함께 음악을 좋아한다는 동질감으로 그들은 쉽게 말을 꺼내고 쉽게 친해져갔다. 한 중년 아저씨에게 왜 이런 하우스 콘서트에 오게 되는가를 물었을 때, 그의 답은 간단했다.
"음악을 좋아하니까요. 음악을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어요. 그건 "엄마가 왜 좋아요?"라고 묻는 것과 똑같으니까."
하우스 콘서트를 여는 사람들 1. 음악가 박창수 씨
작년 7월부터 본격적인 하우스 콘서트를 시도해, 꾸준히 일궈가고 있는 박창수 씨, 그의 이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작곡가이자 피아노 즉흥 연주가. 6세부터 작곡을 시작, 레슨 없이 피아노를 독학했으며, 악보 없이 연주하는 프리뮤직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한 해 50회 정도 왕성하게 연주 활동을 펼치는 그에게, 공식적인 무대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의 폭발하는 감정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무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좀더 자유롭게 연주자와 관객이 호흡하는 장을 만들고 싶어 하우스 콘서트를 직접 열게 되었다고.
사실 그가 하우스 콘서트를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서울예고 친구들과 각자의 집을 돌아가며 모여 연습을 했던 게 시초. 편안하고 자유로운 "그것만의 소통방식"을 느끼게 된 이래, 그 느낌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이 후 외국 공연을 다니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자주 접하는 기회가 생겼고, "그 매력이 왜 국내에는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발전, 결국 그의 집이 하우스 콘서트 장이 되었다.
/ 박창수씨 홈페이지 www.free-piano.com
공식적 무대와 하우스콘서트, 다른 점은 뭘까요?
공연장에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다소 피상적으로 연주를 감상하게 되기 쉽지요. 하지만 유명 연주가를 당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연주를 듣는다고 상상해 봐요. 그 차이는 엄청납니다. 그건 연주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이 딱 오니까요. 하우스 콘서트에 온 연주자들도 그 점을 무척 만족스러워들 합니다.
특별한 준비 과정이 있었나요?
4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그때는 집 수리를 못했는데, 하우스 콘서트를 기획하면서 2층을 개조하기로 마음먹었지요. 방 세 개가 있던 2층을 하나로 터서 홀로 만든게 전부입니다. 특별한 장치나 비용이 더 든 것은 없어요. 단독 주택 아니라 넓은 평수의 아파트 거실도 마음만 먹으면 하우스 콘서트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모니카, 팬 플루트, 기타 정도라면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충분이 가능하지요.
관객들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외엔 별 공통점이 없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도도 있고, 음악 치료사나 사운드 엔지니어 같은 음악 계통 전문가도 있지만, 한의사, 건축가, 가정 주부, 공무원 등 직업이 다양하지요. 최연소 관객은 열 살 미만 아이, 최장수 관객은 여든 된 노인 분이셨지요.
그들은 어떻게 초대받나요?
기사를 보고 알음알음 찾아오시는 분들이 꽤 됩니다. 이곳에 한 번이라도 오신 분들이라면 이메일 주소를 알아뒀다가 제가 이메일로 연락을 드립니다. 처음에는 1백명으로 시작했던 이메일 리스트가 이제는 7백명까지 불어났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다 용기 있는 사람들이에요. 남의 집에 불쑥 찾아든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만큼 음악적 열정을 가졌으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한 번쯤 호기심으로 구경 오시는 분들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오셨으면 해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세요?
관객에게 회비 2만원을 받습니다. 그중 1만원은 연주료로 지급하고요(사실 연주자들에게는 섭섭할 만큼의 비용밖에 안 됩니다만), 나머지 1만원으로는 와인과 치즈를 사는 데 지불하지요. 그래도 매번 10여 만원 정도의 적자가 납니다.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우스 콘서트는 문화의 다양성을 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소수의 마니아 층을 영입하고, 대형 무대에서는 결여될 수 있는 전문성도 확보하자는 의미이지요. 요즘 무대는 점점 대형화되고 있지만, 그만큼 질 높은 공연을 대할 수 있는 기회는 적어졌어요. 음악을 즐겨서 가는 것보다는 "나도 이런 것 봤다"는 의식도 많아졌고요. 앞으로 저의 하우스 콘서트에서는 점점 더 다양한 영역을 시도해볼 예정입니다. 예전에도 마임, 피아노 즉흥 연주의 퍼포먼스, 요가 등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이제는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등, 더욱 다양한 공연장으로 만들어 나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