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003년 7월 31일 - 내 집에서 즐기는 공연 ‘하우스 콘서트’
- 등록일2006.01.20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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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서 즐기는 공연 ‘하우스 콘서트’
재계 CEO, 음악가, 건축가 등 지인 초청해 음악회 즐겨
라이브 연주에 ‘생생한’ 느낌
장마비가 내린 7월 18일 금요일 저녁 8시. 연희동의 피아니스트 박창수(40)씨 집에서는 제 29회 ‘하우스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게스트는 트럼펫, 색소폰, 북, 해금의 혼성 4인조 퓨전그룹 ‘앙상블 내일(ENSEMBLE NAEIL)’. 2층에 마련된 25평 규모의 공연장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관객은 20여명으로 20대 젊은 여성부터 연세 지긋한 60대 노인, 중년의 부부까지 다양했다.
10분쯤 지나자 연주자들이 등장했고 불빛조도를 낮췄다. ‘앙상블 내일’이 이날 선보인 음악은 ‘프리뮤직(free music)’으로 리듬, 음계, 화성의 고정된 제약을 거부한 것이었다. 색소폰과 트럼펫의 절규하는 듯한 소리는 안마기, 꽹과리, 놋그릇, 묵주, 쇠사슬, 호루라기, 기타줄이 끊어진 기타 등 다양한 오브제와 결합해 절묘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관객들은 방석을 깔고 꼿꼿이 앉거나 벽에 기대고 계단에 걸터 앉기도 하면서 저마다 음악에 취해있었다.
1시간 남짓 이어진 1부 공연을 마친 후 10분 동안의 휴식시간에는 와인을 마시면서 관객과 연주자 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트럼펫을 연주하는 팀리더 최선배씨는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연주자의 조그만 움직임.표정.심지어 숨 고르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고 관객들이 음악에 몰입하기 때문에 그 어떤 무대보다 교감을 많이 느낄 수 있다”며 “이렇게 관객 가까이에서 연주하는 것은 연주자로서는 무척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2부 공연까지 마친 시간은 밤 10시. 무대는 자연스럽게 와인파티로 이어졌다.
지난해 7월 부터 1년 넘게 하우스콘서트를 열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창수씨다. 박씨는 “작년에만 해도 이 공연이 무척 생소했는데 반응이 좋아 요즘에는 6~7군데에서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요즘 공연장은 너무 대형화되어 객석과 무대가 괴리되어 있다”며 “좁은 공간에서 연주자의 음악을 들으면 음악적 감성이 극대화된다” 라고 하우스 콘서트를 열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4년 전 이곳
으로 이사온 박씨는 방 3개가 있던 2층을 하나로 터서 홀로 만들었다. 5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알음알음 연주자들을 섭외했으나 소문이 나서 내년 1월까지 스케줄이 잡혀있다고 한다. 클래식과 실험적인 음악 연주자들이 대부분이고 마임이나 퍼포먼스 같은 공연예술가도 가끔 초대된다. 지금까지 이 하우스 콘서트를 거쳐간 음악인은 39명 정도. 기타리스트 이병우, 마임이스트 유진규, 타악기 연주자 김대환씨를 비롯해 피아니스트 치노슈이치, 색소폰 주자 볼프강 스트리, 전자음악의 알프레드 하르트 등 외국 연주가들도 많이 초대됐다.
연주 끝나면 와인, 식사 타임
관객층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한 번 온 관객은 꾸준히 찾는 편이다. 박창수씨는 “처음에는 지인들 100명에게 이메일로 초대장을 보냈는데 현재는 매회 700명에게 보낸다”며 “대학생을 비롯해 의사, 판사, 건축가, 의상디자이너,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밝혔다. 참가비는 2만원. 반은 연주자에게, 반은 와인과 치즈, 피아노 조율에 사용된다. 박씨는 “평균 매회 20여만원의 적자가 생기는데 큰돈은 아니지만 누적되니까 약간 부담스럽다”며 “후원을 좀 받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일반인을 위해 박창수씨는 개인 홈페이지(www.free-piano.com)에 공연 동영상을 올려 놓고 있다.
재계의 손꼽하는 음악애호가인 박성용(71) 금호그룹 명에회장도 하우스콘서트를 열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5월 한남동 자택 거실에 25평 규모의 ‘문호홀’ 이라는 음악 홀을 만들어 한 달 평균 1회 이상의 공연을 갖고 있다, 금호문화재단 정혜자 상무는 “회장님이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하우스콘서트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 관심있는 게스트를 모시고 신예연주자를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금호아트홀에서 연주한 음악가나 신예 영재연주가 등이 주로 초대된다. 내한 공연을 가진 해외유명 연주자의 경우 이곳으로 따로 초대되기도 한다. 콘서트는 비공개로 열리는데, 관객으로 초대된 이들은 박 회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지인들이나 문화계 인사. 금호아트홀의 멤버십 회원들이다. 대개 50~60명 가량이 참석한다. 1시간 남짓 진행되는 공연이 끝난 후 간단한 식사와 티타임도 갖는다. 정혜자 상무는 “대형 공연장과 달리 관객과 무대가 무척 가깝고 친근하지만 연주자들은 오히려 관객이 너무 가까이 있으니까 더 긴장되고 어려워 한다” 고 말했다. 정 상무는 또 “한 번 하우스콘서트에 참석한 관객은 당일 연주한 음악가의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관객 수준도 ‘수준급’
경기도 파주의 도자기 공방 ‘우일요’ 김태욱 사장 또한 하우스콘서트를 열고 있다. 김태욱 사장은 한국백자를 새롭게 해석, 발전시키고 있는 도예가 김익영 선생의 동생이다. 재작년에 하우스콘서트를 열기 시작한 김 사장은 1년 2회 정도만 연다. 콘크리트 바닥이던 회사 건물 3층의 도자기 전시장(60평 규모)에 송판으로 무대를 만들어 콘서트 장으로 꾸몄다. 김 사장은 “20대에 국악 감상그룹인 ’가락동인회’에서 이미 하우스콘서트의 묘미를 느꼈다”며 원래 20평짜리 다락방에 두고 혼자 듣던 오디오였는데 지인들이 서로 ‘이 좋은 소리를 혼자 듣지 말고 공개하라’고 채근해서 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은 백자 전문이기 때문에 음악도 백자와 어울리는 단아한 클래식 위주의 곡으로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관객은 예술을 좋아하는 전문직이 많은데 연주자까지 100여명이 모인다. 1시간 30분의 공연이 끝나면 요리연구가 윤혜신씨가 준비한 음식을 곁들인 와인 파티가 열린다. 김 사장은 “연주자들이 산속의 가마터에서 수준높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며 연주가 끝나면 도자기 선물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수지 안 맞지만 문화 즐기는 게 기쁨
건축가들의 경우 하우스콘서트를 여는 이들이 몇몇 있다. ‘코어핸즈’ 대표인 건축가 김부곤(45)씨는 매달 셋째주 토요일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초대, 하우스콘서트를 연다. 김씨는 평창동에 새 사옥을 설계할 때부터 공연을 염두에 두었는데 그 결과 ‘코어핸즈’사옥은 1층, 2층, 3층은 물론 마당과 옥상에서도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공간으로 탄생되었다.
지난해 12월 새 사옥 오픈때부터 시작된 하우스콘서트는 주로 실험예술이 많다. 김부곤씨와 KoPAS(코파스.한극실험예술정신)와의 개인적 인연 때문이다. 김씨는 “실험예술을 하는 작가들이 경제적 문제 때문에 많이 위축되고 있다. 공연을 통해 실험예술을 후원하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코파스는 퍼포먼스, 무용, 마임, 보디페인팅 등 실험 공연을 펼치는 아티스트들의 모임이다. 공연은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데 코파스 회원들이 펼치는 4~5회 정도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김부곤씨는 ‘밤 9~10시 부터는 와인파티가 벌어지는데 공연과 예술 이야기에 밤을 새는 경우가 많다”며 “수지타산은 안 맞지만 문화를 즐기고 코파스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즐겁다”고 말했다.
김부곤씨 외에 뉴욕에서 건축을 공부한 건축가 서상원씨 또한 하우스콘서트를 열고 있다. 건축가 박광문씨는 하우스콘서트를 열기 위해 현재 용인에 지하 80평 규모의 콘서트 홀을 짓고 있다. 박씨는 “외국의 경우 아티스트를 위한 하우스를 별도로 분양해줄 정도로 문화예술을 우대한다”며 “일부에서는 ‘사치가 아니냐’는 얘기를 하는데 이런 소규모의 문화교류가 활성화되면 우리나라 전체의 문화수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