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o] 2003년 제9호 - 불특정 소수를 위한 하우스콘서트
  • 등록일2006.01.20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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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이 만난 사람]

불특정 소수를 위한 하우스콘서트를 개최하는

피아니스트 박창수






불특정 다수가 아닌 ‘불특정 소수’를 위한 공간. 음악인 박창수씨(39)는 예술이 그런 공간이 되기를 꿈꾼다. 그래서 그가 택한 것이 인터넷, 그리고 자신의 집이다. “우리 집에 음악 들으러 오세요.” 그는 사람들에게 남몰래 이메일을 보냈다. 물론 지인이 아닌, 모르는 사람들에게 띄운 초대장이었다. 안면도, 친분도 없는 사람들이 오로지 음악의 지붕 아래 ‘자발적’으로 찾아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 가 벌써 1년이 됐다. 하우스 콘서트? 말 그대로 집에서 하는 음악회다. 음악을 꼭 거창하게 예술의 전당에서 들어야 하는가



수백 수천 명의 낯선 숨소리와 성급한 박수소리...그 속에 반듯한 옷차림으로 끼어 앉아 듣는 음악은 절반쯤 고통이다. 집에 편안히 앉아 음악의 우주를 유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회가 여기 있다. 박창수씨의 연희동 집에서는 지난해 7월부터 격주 금요일마다 빠짐없이 콘서트가 열렸다. "유행이 되기보다 소수라도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서울예고 시절 친구 집에 몰려다니며 피아노를 두드리던 게 하우스콘서트의 시초였단다. 그의 하우스콘서트는 벌써 29회째를 맞았다. 그새 누구나 옆집으로 마실 오듯 오는 음악의 이웃들이 늘었다. 또 하우스콘서트를 열겠다고 자문을 구해오는 사람들도 늘었다. 1층은 주방과 침실, 2층은 그의 스타인웨이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있는 스튜디오. 20~40명 가량의 사람들이 2층 마룻바닥에 흩어져 앉는다. 삼삼오오 나란히 앉는 사람, 명상하듯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 거실벽에 기대앉은 사람. 박씨는 이들을 위해 ‘누워서 보기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공연은 저녁8시, 2층 홀 통유리창을 통해 이웃집 지붕의 아우트라인이 노을 속에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할 무렵 시작된다. 물론 정시에 시작하란 법은 없다. 예약한 손님이 조금 늦으면 기다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편안함이 음악적 긴장감까지 없앤 건 아니다. 박창수씨네 하우스콘서트는 입소문이 나면서 음악주자들이 다녀가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가 됐다.



하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말하지 않았던가. (정식)콘서트홀에서의 연주회는 ‘속임수’가 아니냐고. "도덕적으로 비열한 짓, 속임수, 솔리스트에게 주어지는 권력과 지배의 위치, 대중에 대한 비굴한 의존"이라고. 그리고 32세에 정상에 오른 이 신화적 피아니스트는 일체 공개연주회를 중단하고 스튜디오 작업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박씨의 하우스를 알았다면, 글렌 굴드의 연주를 사람들이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간 박씨집을 거쳐간 음악가는 기타리스트 이병우, 피아니스트 신이경, 마임이스트 유진규, 오보이스트 손형원, 씨 등이다. 본공연이 끝나고도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때로 박씨의 즉흥연주(free music)를 들을 수도 있다. 이곳에는 내년 1월까지 출연자 일정이 잡혀있을 정도. “우리나라에 이런 형식의 음악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바로크시대 등엔 소규모의 살롱음악회가 많았습니다. 요즘은 상업화, 대형화되면서 이런 자리가 드물지요.”



하우스 콘서트에 참가한 성악가 오은경(세종대 교수)씨는 작은 청중들 앞에서 조근조근 소회를 전한다. "성악은 특히 가사전달이 중요하다"며 독창에 앞서 연주곡의 바탕이 된 시를 읊기도 하고, 자신이 처음 이 곡을 접했을 때의 감동을 이야기하기도 했다.“너무 가까이서 노래를 하니까 더 떨리기도 하고 동시에 집에 있는 듯한 편안함도 느껴졌어요. 내 숨소리와 인상쓰는 것까지 바로 앞에서 보여지니까요.”



하우스 콘서트의 단골손님이자 박씨의 대학후배인 피아니스트 임미정(울산대교수)씨는 “연주자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깊은 내면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각자 최근의 연습곡과 초연곡들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도 되거든요”라고 강조한다. 방북 연주로 화제가 된 임씨는 실제로 예서 북한 작곡가의 곡을 국내 초연하기도 했다. 청중으로 다녀간 이가 지난해 7월 100여명에서 현재는 600여명으로 불어났다.



하우스 콘서트를 30번 여는 동안 적자폭도 400만원이상으로 불어났다. 관객 1인당 2만원의 입장료를 받아 그 중 50%를 연주자 개런티로 지급하고, 관객 뒤풀이용 와인과 치즈를 사고 나면 늘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주 오는 단골손님들한테는 입장료를 못 받기도 하고, "손님들 신발 정리하는 일이라도 거들겠다"는 가난한 학생 손님들한테는 돈을 받을 수가 없단다. 그러면서도 음악에 취해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픈 사람들을 위해 "포도주 회사에 후원이라도 청해야 할 지경"이라는 게 손님을 맞는 주인 박씨의 마음이다. 박씨의 하우스는 콘서트 무대인 동시에 그의 작업공간이다. 연습공간과 연주무대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곳이다. 즉흥연주의 자유를 추구하는 그가 8월 8일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정격 무대인 ‘금호아트홀’에 초청공연을 갖게 됐다.



정통 클래식 공간인 금호아트홀에 즉흥연주자, 그것도 퍼포먼스에 가까운 자유연주를 추구하는 박씨가 초청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막상 금호아트홀 측에서도 피아노 망가질까봐 “피아노 괜찮겠죠”라며 확인 반, 다짐 반 하더라고 말한다. 90년 그의 도쿄 공연 ‘레퀴엠’을 생각하면 그런 걱정이 이해도 된다. 그때 그는 무대를 뒤덮는 하얀 대형 천 속에서 25분간 피아노를 쳤다. 두 손에 돌을 쥔 채 손을 붕대로 감고, 눈을 가리고, 목구멍 깊숙이 핀마이크를 꽂은 채였다. 주먹 쥐고 치는 피아노 소리와 고통스런 숨소리. “부자유한 상태를 테스트해 본 것이다. 어떤 부자유한 조건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변이다. 심야 라디오 방송 진행자같이 자꾸만 채널을 맞추고 싶어지는 그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 어디에 그런 폭발적 에너지가 숨어있었을까



6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는 그가 생애 첫 퍼포먼스로 세상을 놀라게 한 건 14살 때. 12채의 한옥대문에 돼지 피를 묻혀 ‘12’라는 숫자를 쓰고 대문 앞 공터에 불을 지펴 제의식을 치른 후, 집집마다 대문을 두들기고 알몸으로 도망간 게 그것이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재학시절에는 검은 천으로 음대 건물을 뒤덮고 그 앞 공터에 땅을 판 후 불을 지르는 작품 ‘호흡’을 공연하기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수석입학했던 서울대 졸업을 1년도 안 남기고 자퇴했다. 형식과 관습을 넘어서는 일



그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게 관건이다. 그에게 즉흥연주란 자유인 동시에 가장 커다란 공포다. 특히 홀로 하는 즉흥은 더욱 심하다. 그는 딱 2번, 즉흥연주를 하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고 고백한다. 94년 독일문화원 공연 때는 자신만 실패한 걸 알도록 능숙하게 감췄고, 워커힐 미술관에서는 연주 중간에 포기하고 피아노를 내려온 기억이 있다. 그래도 씨어터 제로 개관공연 때는 24시간 12분이라는 최장시간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4시간 그가 피아노에 앉아 있는 동안 콘트라베이스, 오보에 연주자들은 잠시 사우나를 하거나 눈을 붙이고 올 정도였다. 객석의 관객이 시간대별로 바뀌었고, 그의 장인장모는 “내 사위 죽는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에겐 구도하듯, 마음이 빈 상태로 연주할 수 있도록 마인드 컨트롤 잘 하는 게 공연 준비의 전부다. 금호아트홀 공연도 ‘Summer in blue’라는 컨셉만 정해졌을 뿐, 마음을 다스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협화음 속의 자유를 찾는 음악인 박창수. 그러나 일상인으로서 그는 지극히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집 대문을 들어서면 손님들을 맞는 큰 개 레트와 작은 개 시츠와의 관계가 그렇다. 발코니 개들의 집 안에 설치된 TV는 늘 켜져 있다. “우리 개들은 ‘동물천하’와 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늘 작업에 바쁜 주인 내외 때문에 개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무용하는 그의 아내(김영희, 이화여대 무용과교수)와는 1987년 함께 ‘작업’을 하다 진짜 작업에 들어가게 됐단다. “음악인 남편에 무용가 아내라니 너무 멋있다”고 말하자 “결혼하니 나쁜 점이 아내로부터 작곡비를 못 받는 것”이라고 웃는다. ‘하우스 콘서트’의 전제를 ‘꾸준히 여는 것’이라 강조하는 박씨. 그의 초대를 받은 불특정 소수의 관객들이 세월과 함께 음악을 사랑하는 특정 다수로 변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