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꿈] 2004년 9-10월호 - 제3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음악회
  • 등록일2006.01.26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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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작은 음악회,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 집








하우스 콘서트 제1원칙, 내 집처럼 편안히 즐기는 것



서울 연희동에 있는 피아니스트 박창수 씨의 집. 2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 이곳은 지금 저녁 7시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이다. 방과 거실을 터서 만든 공연장은 40평 남짓한 규모. 집주인인 박창수 씨의 검은색 피아노가 오른쪽에 놓여 있고, 그 옆으로 깔린 작은 카펫 위에 네 명의 연주자들이 앉아 있다. 무대라고는 해도 관객의 자리와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냥 거실을 관객과 연주자들이 나누어 가진 모양새다.



“벌써 2년이 넘었네요. 2002년 7월부터 하우스 콘서트를 열기 시작했으니까. 문화의 다양성을 높인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관객과 연주자들의 호응이 좋습니다. 내년 4월까지는 연주회 일정이 다 잡혀 있을 정도니까요.” 큰 무대 공연보다 관객과 연주자 사이의 밀착이 훨씬 강하다는 것이 박창수 씨의 말이다. 연주자의 표정은 물론 숨소리와 땀방울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바로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틀이나 격식이 필요 없는 것도 하우스 콘서트의 커다란 장점이다. 그냥 편한 대로, 좋은 대로 즐기면 된다. 의자에 똑바로 앉아 숨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하다가 정해진 타이밍에 맞추어 박수를 치는 것도 하우스 콘서트에선 촌스러운 일이다. 신이 날 땐 환호하고, 다리를 뻗고 싶을 땐 뻗고, 벽에 기대고 싶을 땐 기대면 그만이다. 내 집에서처럼 스스럼없이 즐기는 것. 그것이 하우스 콘서트의 제1원칙이다.







음악이 전하는 파동을 귀로 듣고 온몸으로 느끼는 즐거움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연주자들의 맞은편에 앉은 관객들은 대략 2,30명가량. 집주인 박창수 씨가 앞으로 나오더니 털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연주자들이 다 앉아 있으니까 저도 앉아서 소개를 하겠습니다. 오늘은 타악기 공연입니다. 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울리는 느낌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대로, 음악이란 진동의 예술이다.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마룻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진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따라서 연주자의 가까이에서 음원의 파동을 생생하게 전해 받는 것은 대형 공연장이 아닌 하우스 콘서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관객들은 긴장을 풀고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즐긴다. 맨발로 온 사람, 원피스를 입은 사람, 그냥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사람 등 복장도 자유자재다. 한손에 책을 들고 온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 주부 등 연령대도 다양하고, 벽에 기대앉거나 뒤로 팔을 괴는 등 자세도 가지각색이다.



“지금 들으신 곡은 존 케이지의 ‘세컨드 컨스트럭션’입니다. 존 케이지는 특정음에 나사는 볼트 등을 끼워 독특한 소리를 내는 피아노 연주는 즐겼는데요. 저는 오늘 머리핀과 10월짜리 동전, 나무젓가락을 꽂았어요. 특이하죠? 하지만 사실 존 케이지의 작품으로는 평범한 겁니다. 피아노를 망치로 때리는 곡도 있으니까요.” 연주 사이사이에 해설이 곁들여지고, 연주자와 관객들이 서로의 반응을 즐긴다. 연주자는 관객의 표정을 읽고 관객은 연주자의 열정을 느끼며 함께 하나의 멋진 콘서트를 완성해가는 것이다.







공연이 끝난 후, 연주자와 함께 즐기는 와인파티



하우스 콘서트에서 공연만큼이나 인기가 좋은 것은 연주가 끝난 후 이어지는 와인파티다. 파티라고는 해도 와인과 치즈가 전부. 그러나 연주자와 관객들이 함께 만나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대형 공연장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음악이요? 전 문외한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냥 듣는 걸 좋아할 뿐이죠. 하우스 콘서트라는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봤는데, 참 편안하더라고요. 대형 공연장은 분위기가 딱딱하잖아요. 공연 끝나면 우르르 다 나가버리고. 그런데 여기선 다른 관객들과 금방 친해져서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어요.”



편안함이 좋아 하우스 콘서트의 마니아가 되었다는 회사원 김덕현 씨는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작은 공연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라고 말한다. 대학생 김성택 씨도 비슷한 이유로 마니아가 된 경우다. “소리는 무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게 마련인데, 좁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울림은 정말 대단합니다. 큰 무대와는 소리 자체가 다르죠. 물론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자꾸만 오게 되는 것도 있고요.”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이예은 씨는 보다 적극적이다. 아예 콘서트 날에 맞춰서 휴가를 낼 정도. “보고 싶었던 공연을 여기서 다 볼 수 있는데다 입장료도 대형 공연장에 비해 부담이 없어서 자주 옵니다. 예전에 재즈 공연을 본 후에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재즈에 입문하기도 했어요. 하우스 콘서트는 올 때마다 새롭고 올수록 즐거운 것 같습니다.”







색다른 관람의 체험과 실험적인 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



한편 연주자들에게 있어서도 하우스 콘서트 무대는 색다른 체험이자 모험이다. 자칫 조그만 실수를 해도 바로 관객들이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반면, 함께 ‘필’이 꽂힐 땐 그보다 신이 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관객과 하나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연주를 하는 것이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연주자 배유진 씨는 창조적 음악성을 끌어내는 공간으로서 하우스 콘서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다. 열정적인 드럼 연주로 앙코르까지 받았던 에드워드 최 역시 관객들과의 일체감이 놀랍다고 말한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까 보람이 큽니다. 사실 가까이에서 관객들이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음악적인 면 말고도 시각적인 면까지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컸거든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는 3~4개, 비정기적인 것까지 포함하면 10여 개에 달한다. 음악 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를 접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인데, 박창수 씨의 연희동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단편영화와 무용, 요가, 세미나 등이 전체의 약 1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좋은 예술작품은 누구에게나 금방 와 닿는 법.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그냥 편안하게 즐기는 가운데 예술과 친해지는 것이다. 마치 프랑스의 살롱문화가 그랬듯, 하우스 콘서트는 오늘날 새롭고 실험적인 예술의 탄생을 돕는 매력적인 매개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