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5년 9월 28일 - 음악과 열정만으로 하나된 그들, 100번째 감동
  • 등록일2006.01.27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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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열정만으로 하나된 그들

100번째 감동





>100회 맞은 박창수씨네 하우스콘서트


서울 연희동 연희초등학교 앞. 육교를 건너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를 끼고 쭉 들어오다 보면 갈색 벽돌 이층집이 눈에 띕니다. 고만고만한 이웃집들과 별 다를 것도 없는데, 매달 2번 금요일 저녁이면 수십명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간단한 음식을 장만하고 현관과 베란다, 집안에 불을 하나 둘 밝히고, 마지막으로 대문 앞에 꽃무늬가 장식된 자그마한 나무 간판을 내걸면…. 손님 맞을 준비는 끝입니다. 간판엔 ‘하우스 콘서트’라고 써 있네요. 말 그대로 집에서 여는 작은 음악회. 지난 23일 작곡가이자 즉흥 피아노 연주자 박창수씨(41·촛불 끄는 이)네 집의 하우스 콘서트가 100회를 맞았다기에 가 봤습니다.







# 공연 30분 전

연주회장에 흔한 꽃다발 대신 100회 공연을 축하한다며 떡 한 봉지, 와인 한 병씩 사들고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1층 여기저기 제집인 양 편하게 앉아 책장에 있는 책을 빼내 드는 모습이 자연스럽습니다. 주방에선 콘서트 후 나눌 음식준비에 분주합니다. 찬장, 냉장고를 열어 와인잔을 준비하고 치즈를 자르고, 비스킷과 떡을 접시에 올리는 폼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음식준비며 설거지, 출연자 자녀 돌보기까지. 자잘구레한 일들을 기쁘게 도맡는 스태프 10여명은 관객으로 왔다가 자원봉사를 하게 된 이들입니다.



“대형 연주장에선 느낄 수 없는 관객과 연주자가 하나가 되는 열기에 반했어요.” 하우스 콘서트 소식을 이메일로 전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강선애씨(숙대 작곡과 3). 처음엔 늦은 귀가에 걱정하시던 부모님도 한번 와 보시고는 감동을 받으셨답니다.



“모두 2층으로 가세요.” 이제 공연이 시작되나 봅니다.







# 축 ‘100회 하우스 콘서트’

“오늘 100회 공연에 연주하실 분들은 여러분이 뽑아주셔서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달랑달랑하게 턱걸이했어요.”



박씨의 말에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첫번째 연주자가 등장합니다. 얼마 전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운 김선욱군(17). 우아한 커튼 뒤가 아닌 마루 저 끝에서부터 방석에 앉아있는 관객들 사이를 ‘헤치고’ 입장합니다. 곧이어 25평 연주공간을 가득 채우는 피아노 소리, 땀범벅된 숨소리, 페달밟는 소리….



첼리스트 채희철 교수(숙명여대)의 연주, 해금 강은일씨와 박창수씨의 즉흥연주, 가수 강산에씨의 무대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벽, 관객과 연주자의 벽은 이미 하나로 녹아들었습니다.



“연주자로선 관객과 너무 가까이 있다는 것이 그리 쉬운 무대는 아니죠. 그런데 개인적인 관계로 동원돼 의무감에 온 사람들이 아닌, 제 음악을 듣고 싶어 오는 사람들, 진정 음악을 호흡하고 싶어 오는 관객들을 보면 즐겁습니다.” 박씨와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동창인 채희철 교수는 이번이 5번째 무대인데, 이곳에 오는 날은 늘 기쁘다고 합니다.



마지막 연주곡이 끝나고 하우스 콘서트의 백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와인잔을 함께 기울이며 연주자와 관객이 어울리는 순간입니다. 퇴근 후 중학생인 아들과 이곳을 찾은 정민욱씨(45·회사원)는 “우리나라에 피곤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옹달샘 같은 곳이 있을 줄 몰랐어요”라며 다시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 주인장 박창수씨와 하우스 콘서트

친구들 집 좁은 공간에서 연주를 하며 큰 감동을 느꼈던 고등학생. 박씨가 2층의 방 3개를 터 연주공간을 만든 3년전 박씨의 20년 꿈이 이뤄졌습니다.



섭외의 첫번째 조건은 열정입니다.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나누는 음악에 대한 열정. 그게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한 이유였거든요. 처음엔 연주자들 섭외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귀로 들리는 소리뿐 아니라 바닥의 진동, 연주자와 하나가 되는 분위기로 관객에 전해지는 감동을 느끼며 이젠 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연락을 해올 만큼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을 알게 됐습니다. 또 많이 유명해졌습니다. 지인 수십명에게만 보내던 메일이 이젠 2,000여명에 이릅니다. R석, S석, A석, B석은 없습니다. 학생, 공무원, 회사원, 운수업, 일용 노동자들, 지난해 말 찾았던 이웃에 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방석석’의 관객일 뿐입니다.



가장 기쁜 점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공연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겁니다. 전국 15곳으로 늘어난 하우스 콘서트들 사이엔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도 형성되고 있답니다.



집청소와 장보기, 프로그램 만들기와 섭외, 공연 후 연주자에게 선물할 CD, DVD 편집까지. 1주일에 사나흘은 꼬박 하우스 콘서트에 매달려 살아야 하는 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명절, 휴가가 없어졌고 2만원의 회비로 개런티와 간식준비까지 오히려 적자가 쌓이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풀뿌리 음악문화’가 확산된다는 보람에 박씨는 오늘도 다음 콘서트를 준비합니다. ‘101회 콘서트는 30일 오후 8시 창수네 집’. www.cyworld.com/hconcert







/글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 |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