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Magazine] 2006년 March - 무모한 삶을 꿈꾸는 아티스트
  • 등록일2006.04.29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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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삶을 꿈꾸는 아티스트






어떤 일이든 가장 먼저 시도하고자 하는 열망은 나의 습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로인해 마음만은 늘 바빳지만 그것이 곧 예술가 정신이라 믿었다.



다니던 학교를 기세좋게 떠나온 나는 그해 12월 30일 대학로 바탕골 소극장에서 일종의 데뷔무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강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박창수의 행위음악 Chaos> 라는 공연 타이틀로 데뷔무대를 장식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첫 공연은 문화계에 나의 작은 시작을 알리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장르였던 행위예술이 음악에도 접목될 수 있다는 발상을 제공했다는 면에서 작지만 소중한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10년이란 긴 시간 동안 활동하던 지난 96년 12월 30일. 가까운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내가 처음 눈물을 보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간의 시간이 몹시 험난하고 외로웠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언제까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이 아마 더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 같다. 그 눈물 이후, 경기도 퇴촌의 한적한 공간에서 새로운 예술 작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프리뮤직 연주자로서의 변신이었다. 내겐 일종의 도전이었으며 발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평소 생각하던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을 저지르게 된다. 2002년 7월, 집에서 하는 음악 콘서트인 "하우스 콘서트" 라는 생소한 도전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112회까지 이어져오고 있으며, 매달 새로운 연주자와 관객들을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남들이 하지 않았던 작업에 대한 시도는 나이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모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1986년의 데뷔 무대처럼 난 지금도 여전히 남들이 무모하다고 하는 것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_박창수(프리뮤직 아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