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2006년 11월 3일 - 30평 하우스콘서트, 작은무대 큰울림
  • 등록일2006.11.03
  • 작성자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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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콘서트 작은무대 큰울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이 어둠을 뚫고 도심 속 주택가 밤하늘에 잔잔히 울려 퍼진다. 서울 연희동 박창수씨(42) 집에서 격주로 금요일 밤에 열리는 ‘하우스콘서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날 129회째 하우스콘서트 초청연주자는 신예 피아니스트 김선욱군(18·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년). 그의 연주가 시작되기 전 작곡가 겸 연주가인 박창수씨는 김군을 “기대되는 유망주”라며 짤막한 소개를 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수십 명이 모인 작은 콘서트는 서서히 무르익어간다. 동네에서 하나둘씩 모인 관객들은 피아노 선율에 곧바로 숨을 죽인다. 피아니스트와 객석간 거리는 불과 1m 남짓. 연주자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그가 건반을 농락하듯 주물러대기 시작하자 관객들의 심장은 순간 멈춰버릴 것만 같다. 김군은 피아노를 마치 애인처럼 부드럽게, 때로는 깨부숴야 할 혁명의 대상처럼 씨름하듯 힘주어 두드려댄다. 이윽고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리스트가 그의 건반에서 다시 살아난다. 의자 하나 없는 마루 객석에 촘촘히 앉은 관객들은 젊은 피아니스트의 열정적으로 춤추는 듯한 연주에 까무러칠 듯하다.



하우스콘서트를 마친 김선욱군은 3주 뒤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 세계를 놀라게 한다. 이 콩쿠르에선 세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씨가 지난 75년 공동 4위를 했다. 박창수씨의 하우스콘서트는 3일 제134회째를 맞는다.



박창수 하우스콘서트에는 전 세계 뮤지션들이 찾는다. 가끔씩은 엄청난 거장들도 있다. 지난 83회 때는 독일 피아니스트 올리버 케른도 박씨의 집에서 연주했다. 올리버 케른은 전세계 콩쿠르에서 10여 차례나 우승했고 독일인 최초로 비엔나 "베토벤상"과 뮌헨 "ARD상"을 함께 수상한 연주자다.



뿐만 아니라 각종 세계 하모니카 대회 우승자인 일본의 다케우치 나오코와 함께 중국 전통 음악가, 영국 타악기 연주자 등도 이곳 무대에서 실력을 뽐냈다.



박창수씨는 서양음악을 공부했지만 관객에게 클래식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음악 취향은 때때로 충분히 바뀔 수 있고 모든 음악 나름대로 독특함이 있다는 게 박씨의 소견이다.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면서도 작품성만 있다면 어떤 음악이라도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박씨의 음악회에는 클래식 다음으로 유난히 프리뮤직 연주회가 많다. 가끔씩은 국악, 실험음악, 마임 공연도 가졌다.



박씨의 하우스콘서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음악회 뒤 열리는 와인파티다. 일반 공연에선 10만원자리 티켓을 사더라도 배고픔을 참아야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입장료로 2만원을 받는 것도 관객들에게 와인과 치즈 안주 등을 충분히 제공하기 위함이다.



와인파티에는 그날의 연주자도 함께 한다. 와인파티는 음악가와 관객이 함께 어울리는 가장 편안한 자리가 된다. 깊어가는 가을밤, 박창수 하우스콘서트에 다시 한번 찾아볼까 한다.







국내 하우스콘서트 개척한 박창수씨



하우스콘서트를 통해 국내 공연문화를 바꾸고 있는 박창수씨를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른 느낌은 기분 좋은 물음표다. 박씨는 무슨 생각을 지닌 사람일까. 약간 긴 듯한 머릿결에 안경을 낀 그는 왠지 고독한 음악가이자 철학가처럼 느껴졌다. 하우스콘서트가 끝난 뒤 열리는 와인 파티가 마무리되고 11시가 다 될 무렵 졸린 눈을 비비며 박씨와 다소 힘겨운 인터뷰를 가졌다. 물론 박창수 하우스콘서트만의 매력인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서….



그에게 그동안 가장 힘겨웠던 때를 먼저 물었다. 사실상 하우스콘서트를 박씨 혼자서 섭외부터 공연기획까지 거의 다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일명 "하콘(하우스콘서트)" 도우미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박창수씨 음악회에는 정성현씨가 사진촬영과 홈페이지 관리를, 강선애·강신애·김주희·박혜림·이복희씨 등이 진행을 돕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모두 나름대로 다른 일들을 갖고 있어 하우스콘서트에만 매달리지 못한다.



"하우스콘서트가 100회를 맞았을 때 슬럼프에 빠졌어요. 그동안 지쳤던 것이 한꺼번에 몰려왔었죠.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는 거예요.



" 박씨도 하우스콘서트를 여는 것이 주된 직업이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이름난 작곡가이며 연주가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틈틈이 그만의 작품을 만들고 많은 무대에서 연주도 했다. 때문에 그에겐 작품을 구상할 시간이 필요하다.



"2주에 한번씩 하우스 콘서트를 여는데 한번 열 때마다 4일 정도는 투자해야 돼요. 그래서 리듬이 많이 깨져요. 하지만 감당해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별한 돈벌이가 되는 것도 아닌 하우스콘서트를 계속 여는 이유를 객석에서 찾았다.



"콘서트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행복해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공연을 그만두는 일은 해야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른 곳에 본보기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책임감도 있습니다. 저희를 계기로 하우스콘서트가 10군데 이상 늘어났다고 들었거든요."



사실 박씨는 하우스콘서트를 크게 확장하거나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려 들지 않는다. 박씨의 부모님도 100회 공연 때야 비로소 하우스콘서트를 찾아왔다. 그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박씨 가족의 불문율이란다. 그는 하우스 콘서트가 커지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다는 다소 애매한 말도 남겼다.



어쨌든 박창수씨는 그동안 걸어온 만큼 앞으로 하우스콘서트를 계속 진행할 생각이다. "하우스콘서트를 여는 동안 4년이 흘렀어요. 일단 앞으로 6년은 더해서 300회를 채울 계획입니다. 또 그 때 되면 1000회를 다시 목표로 세울지도 몰라요. (웃음)"





/글,사진 _ 김경수 기자 rainma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