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람들] 2007년 10월호 - 5년째 이어온 ‘하우스 콘서트’ 박창수 씨.
- 등록일2007.10.11
- 작성자박창수
- 조회3060
좋은 친구 1 / People
“음악,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느끼세요”
5년째 이어온 ‘하우스 콘서트’ 박창수 씨
이제 ‘하우스 콘서트’의 명성은 왠만큼 음악을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하우스 콘서트 무대에 서지 않으면 진정한 음악인이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만큼 인정받는 무대를 만들기까지는 음악가 박창수(44)씨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엔 무슨 집안에서 음악회를 하느냐는 반응이었는데 이젠 공연 때마다 찾는 메니아 관객들이 있고, 매년 정기공연을 이곳에서 펼치는 연주자들이 생겼습니다. 하우스콘서트를 하는 곳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으니 큰 보람이죠.”
하우스 콘서트는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다. 특별히 무대와 관객석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의자도 없다. 연주자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편한 자세로 방석을 놓고 앉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한다.
연주자와 관객 함께 호흡하는 ‘소통의 장’
박씨가 하우스 콘서트를 구상한 것은 서울예고에 재학중이던 1981년. 친구 집에서 악기를 연습하는 일이 많았던 박씨는 아담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편안함이 좋아 이런 소박한 곳에서 공연을 하면 어떨까 항상 생각해왔다. 그러한 상상이 20여 년 만에 현실에서 실현됐다.
이를 위해 박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낡은 집을 개조해 2층의 방 3개의 벽을 모두 터서 30여 평의 작은 콘서트 공간을 만들었다. 2002년 첫 공연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여가 흘렀다. 클래식과 프리뮤직을 비롯해 국악, 대중음악, 독립영화, 퍼포먼스 등 한 달에 두번씩 하는 콘서트에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결코 연주회라고 해서 딱딱한 격식을 갖추고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음악이 아닙니다.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온 마음을 열어 감상하는 게 바로 음악입니다. 연주자가 어떤 연주를 하는지, 어떤 표정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 멀고도 먼 무대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자칫하면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별다른 격식 없이 연주회가 이뤄지다보니 연주자의 표정, 땀방울, 손 떨림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연주자들은 관객들의 호응과 시선을 코 앞에서 보며 함께 호흡할 수 있고, 관객들은 연주자들의 작은 숨소리와 호흡, 땀방울 하나하나, 사소한 동작까지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이렇게 연주자와 관객이 한 마룻바닥에서 백 배 공감하다 보니 다른 공연장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특히 연주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행사가 끝나는 게 아니다. 어쩌면 공연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2부 와인파티다.
공연이 끝나면 연주자들은 와인잔을 들고 관객들과 자연스런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관객들은 연주자와 공연에서 못 다한 얘기들을 나누고 때론 자유롭게 관객과 연주자의 구분 없이 즉석 공연을 갖기도 한다.
관객으로 이곳을 찾았다가 분위기에 매료돼 아예 스테프(staff)로 눌러앉은 동료도 9명이나 된다.
특히 하우스 콘서트는 연주자들에게 한결 같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연주가든 다른 공연장에서 했던 음악이 아닌 하우스콘서트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간혹 다른 무대를 준비하며 리허설 개념으로 이곳 무대에 서고자 하는 경우도 있는데 박씨는 이러한 요청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정열과 자유 분방함 무대에서 발산
즉흥음악(Free Music)을 연주하는 박씨의 연주인생은 연주스타일 만큼이나 자유롭다. 본격적인 음악을 하기도 전인 6살 때 이미 정확한 악보를 그리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작곡을 했고 8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가진 그는 음악에 있어서도 남들과 똑 같은 훈련을 하지 않았다.
“구속받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스스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작곡을 했습니다. 대학을 진학할 때도 피아노 레슨 한번 받지 않고 들어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창의성과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는 기술을 가르치는 기존의 교육법에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한 그는 정형화된 틀에 맞춰 이뤄지는 작곡 공부와 리포트, 시험 등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작곡을 할 때도 악보를 그리지 않고 그림으로 곡을 표현해서 리포트를 내는 등 독특한 시간이 이어졌다.
남들과 똑 같은 것을 거부하던 박씨는 1987년 한국행위예술협회 발기위원으로 참여했다. 지금이야 이색적인 문화활동을 통칭하여 ‘퍼포먼스’라고 표현하지만 박씨는 이러한 표현에도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행위예술인 퍼포먼스는 이색적이고 무척 깊이 있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너무 가볍게 퍼포먼스를 취급하고 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퍼포먼스를 하지 않습니다. 남들과 똑 같은 예술활동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요.”
‘호흡 시리즈’, ‘레퀴엠 시리즈’ 등 독일과 일본 등 17개국에서 공연까지 하며 행위예술분야에도 한 획을 그은 그는 이번에는 실험적인 즉흥음악에 몰두한다.
박씨의 즉흥음악은 말 그대로 응집력과 폭발력의 결정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조용한 목소리와 내성적인 성격인 박씨의 평소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정열과 자유분방함이 무대에만 서면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즉흥음악은 작곡의 과정을 무대에서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관객들과의 교감과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우러나오는 음악을 그대로 옮겨놓는 겁니다. 때로는 곡이 나오지 않을 때 이러한 과정 역시 모두 연주의 하나로 표현해냅니다.”
해외 음악대학에서는 입시과정에 즉흥연주를 시험과목으로 둘 정도로 주위와의 교감과 표현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학벌과 인맥 등 조건을 중시하는 풍조가 뿌리깊다. 20대 후반 무렵 그는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 한 작곡가들의 모임에 참여했다가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음악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 찾은 자리에서 세가지 이유로 모임참여를 거절당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으며, 음악이 이상하다는 게 이유였죠. 당시 굉장한 충격을 받았는데 과연 창작활동을 하는 데 이러한 조건이 꼭 필요할까 의문이 듭니다.”
“예술가 정신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무엇보다 자유로움 속에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던 그가 하나의 창구로 마련한 것이 바로 하우스콘서트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우스콘서트가 순항을 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하우스콘서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 시작한 만큼 초기에는 공연무대가 집이라는 말을 들은 연주자들 대부분이 공연요청을 거절했다. 음악가라고 하면 고상하고 품격 있는 장소에서 연주를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뿌리 깊을 때라서 연주자를 섭외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반면, 관객들과 깊은 소통을 나누는 무대를 꿈꿔온 연주자들에게는 하우스콘서트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명성을 쌓은 끝에 지금은 내년 10월까지 연주자 스케줄이 잡혀있을 정도로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기를 원하는 연주자들이 줄을 잇는다.
“연주자들의 반응을 보면 새삼 변화를 실감합니다. 일반인들과 연주자들 모두에게 하우스콘서트의 진정한 의미를 인정받은 거니까요.”
하지만 5년째 이어온 활동이지만 박씨에게는 여전히 고민거리가 남아있다. 연주자 기획부터 섭외, 연주진행, 마무리까지 하루의 콘서트를 열기 위해 꼬박 며칠씩 매달려야 하는 준비과정을 갖다 보니 정작 개인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독일 공연을 갔을 때는 하루 현지에서 공연하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하우스콘서트를 개최하고 그날 밤 다시 독일로 되돌아가 공연을 계속한 일도 있었다.
또한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5년간 콘서트를 해오며 박씨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만 해도 4천여만 원, 시간적, 경제적 힘겨움으로 지친 그는 한때 하우스콘서트를 접을까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이들이 바로 하우스콘서트의 관객들이다.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콘서트에 목말라있던 사람들은 ‘제발 하우스콘서트를 없애지 말아달라’며 호소했고 ‘작은 콘서트’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절실했음을 실감한 그는 차마 콘서트를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의욕으로 시작해 어려움도 많고 힘겨움도 느끼지만 하우스콘서트를 사랑하는 관객들을 생각하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다짐합니다. 이런 공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니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서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의무니까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 정신’이라며 만약 다른 사람들이 하우스콘서트를 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음에는 어떤 작업으로 선보일지 기대해 본다.
글 이의숙 / 사진 지요한
“음악, 귀로만 듣지 말고 온몸으로 느끼세요”
5년째 이어온 ‘하우스 콘서트’ 박창수 씨
이제 ‘하우스 콘서트’의 명성은 왠만큼 음악을 안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하우스 콘서트 무대에 서지 않으면 진정한 음악인이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만큼 인정받는 무대를 만들기까지는 음악가 박창수(44)씨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엔 무슨 집안에서 음악회를 하느냐는 반응이었는데 이젠 공연 때마다 찾는 메니아 관객들이 있고, 매년 정기공연을 이곳에서 펼치는 연주자들이 생겼습니다. 하우스콘서트를 하는 곳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으니 큰 보람이죠.”
하우스 콘서트는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콘서트다. 특별히 무대와 관객석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의자도 없다. 연주자를 중심으로 관객들이 편한 자세로 방석을 놓고 앉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감상한다.
연주자와 관객 함께 호흡하는 ‘소통의 장’
박씨가 하우스 콘서트를 구상한 것은 서울예고에 재학중이던 1981년. 친구 집에서 악기를 연습하는 일이 많았던 박씨는 아담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편안함이 좋아 이런 소박한 곳에서 공연을 하면 어떨까 항상 생각해왔다. 그러한 상상이 20여 년 만에 현실에서 실현됐다.
이를 위해 박씨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낡은 집을 개조해 2층의 방 3개의 벽을 모두 터서 30여 평의 작은 콘서트 공간을 만들었다. 2002년 첫 공연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여가 흘렀다. 클래식과 프리뮤직을 비롯해 국악, 대중음악, 독립영화, 퍼포먼스 등 한 달에 두번씩 하는 콘서트에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결코 연주회라고 해서 딱딱한 격식을 갖추고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음악이 아닙니다.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온 마음을 열어 감상하는 게 바로 음악입니다. 연주자가 어떤 연주를 하는지, 어떤 표정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 멀고도 먼 무대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자칫하면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별다른 격식 없이 연주회가 이뤄지다보니 연주자의 표정, 땀방울, 손 떨림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연주자들은 관객들의 호응과 시선을 코 앞에서 보며 함께 호흡할 수 있고, 관객들은 연주자들의 작은 숨소리와 호흡, 땀방울 하나하나, 사소한 동작까지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이렇게 연주자와 관객이 한 마룻바닥에서 백 배 공감하다 보니 다른 공연장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동과 전율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특히 연주가 끝났다고 해서 모든 행사가 끝나는 게 아니다. 어쩌면 공연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2부 와인파티다.
공연이 끝나면 연주자들은 와인잔을 들고 관객들과 자연스런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관객들은 연주자와 공연에서 못 다한 얘기들을 나누고 때론 자유롭게 관객과 연주자의 구분 없이 즉석 공연을 갖기도 한다.
관객으로 이곳을 찾았다가 분위기에 매료돼 아예 스테프(staff)로 눌러앉은 동료도 9명이나 된다.
특히 하우스 콘서트는 연주자들에게 한결 같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연주가든 다른 공연장에서 했던 음악이 아닌 하우스콘서트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간혹 다른 무대를 준비하며 리허설 개념으로 이곳 무대에 서고자 하는 경우도 있는데 박씨는 이러한 요청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정열과 자유 분방함 무대에서 발산
즉흥음악(Free Music)을 연주하는 박씨의 연주인생은 연주스타일 만큼이나 자유롭다. 본격적인 음악을 하기도 전인 6살 때 이미 정확한 악보를 그리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작곡을 했고 8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을 가진 그는 음악에 있어서도 남들과 똑 같은 훈련을 하지 않았다.
“구속받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스스로 피아노를 연습하고 작곡을 했습니다. 대학을 진학할 때도 피아노 레슨 한번 받지 않고 들어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 창의성과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는 기술을 가르치는 기존의 교육법에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한 그는 정형화된 틀에 맞춰 이뤄지는 작곡 공부와 리포트, 시험 등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작곡을 할 때도 악보를 그리지 않고 그림으로 곡을 표현해서 리포트를 내는 등 독특한 시간이 이어졌다.
남들과 똑 같은 것을 거부하던 박씨는 1987년 한국행위예술협회 발기위원으로 참여했다. 지금이야 이색적인 문화활동을 통칭하여 ‘퍼포먼스’라고 표현하지만 박씨는 이러한 표현에도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행위예술인 퍼포먼스는 이색적이고 무척 깊이 있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너무 가볍게 퍼포먼스를 취급하고 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퍼포먼스를 하지 않습니다. 남들과 똑 같은 예술활동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요.”
‘호흡 시리즈’, ‘레퀴엠 시리즈’ 등 독일과 일본 등 17개국에서 공연까지 하며 행위예술분야에도 한 획을 그은 그는 이번에는 실험적인 즉흥음악에 몰두한다.
박씨의 즉흥음악은 말 그대로 응집력과 폭발력의 결정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조용한 목소리와 내성적인 성격인 박씨의 평소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정열과 자유분방함이 무대에만 서면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즉흥음악은 작곡의 과정을 무대에서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관객들과의 교감과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우러나오는 음악을 그대로 옮겨놓는 겁니다. 때로는 곡이 나오지 않을 때 이러한 과정 역시 모두 연주의 하나로 표현해냅니다.”
해외 음악대학에서는 입시과정에 즉흥연주를 시험과목으로 둘 정도로 주위와의 교감과 표현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학벌과 인맥 등 조건을 중시하는 풍조가 뿌리깊다. 20대 후반 무렵 그는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 한 작곡가들의 모임에 참여했다가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음악을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에 찾은 자리에서 세가지 이유로 모임참여를 거절당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으며, 음악이 이상하다는 게 이유였죠. 당시 굉장한 충격을 받았는데 과연 창작활동을 하는 데 이러한 조건이 꼭 필요할까 의문이 듭니다.”
“예술가 정신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
무엇보다 자유로움 속에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던 그가 하나의 창구로 마련한 것이 바로 하우스콘서트다.
그러나 처음부터 하우스콘서트가 순항을 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하우스콘서트라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 시작한 만큼 초기에는 공연무대가 집이라는 말을 들은 연주자들 대부분이 공연요청을 거절했다. 음악가라고 하면 고상하고 품격 있는 장소에서 연주를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뿌리 깊을 때라서 연주자를 섭외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반면, 관객들과 깊은 소통을 나누는 무대를 꿈꿔온 연주자들에게는 하우스콘서트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명성을 쌓은 끝에 지금은 내년 10월까지 연주자 스케줄이 잡혀있을 정도로 하우스콘서트 무대에 서기를 원하는 연주자들이 줄을 잇는다.
“연주자들의 반응을 보면 새삼 변화를 실감합니다. 일반인들과 연주자들 모두에게 하우스콘서트의 진정한 의미를 인정받은 거니까요.”
하지만 5년째 이어온 활동이지만 박씨에게는 여전히 고민거리가 남아있다. 연주자 기획부터 섭외, 연주진행, 마무리까지 하루의 콘서트를 열기 위해 꼬박 며칠씩 매달려야 하는 준비과정을 갖다 보니 정작 개인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독일 공연을 갔을 때는 하루 현지에서 공연하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하우스콘서트를 개최하고 그날 밤 다시 독일로 되돌아가 공연을 계속한 일도 있었다.
또한 경제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5년간 콘서트를 해오며 박씨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간 돈만 해도 4천여만 원, 시간적, 경제적 힘겨움으로 지친 그는 한때 하우스콘서트를 접을까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이들이 바로 하우스콘서트의 관객들이다.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콘서트에 목말라있던 사람들은 ‘제발 하우스콘서트를 없애지 말아달라’며 호소했고 ‘작은 콘서트’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절실했음을 실감한 그는 차마 콘서트를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 의욕으로 시작해 어려움도 많고 힘겨움도 느끼지만 하우스콘서트를 사랑하는 관객들을 생각하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다짐합니다. 이런 공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니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서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의무니까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예술가 정신’이라며 만약 다른 사람들이 하우스콘서트를 했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음에는 어떤 작업으로 선보일지 기대해 본다.
글 이의숙 / 사진 지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