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07년 11월 22일 - 온몸으로 듣는 선율 진한 울림으로…
  • 등록일2007.11.22
  • 작성자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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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듣는 선율 진한 울림으로…


작은 무대 큰 감동‘하우스콘서트’속으로

한 달에 두세 번씩,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금요일 저녁이면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박창수(43) 씨의 집 대문 앞에는 환하게 불이 켜진다. ‘하우스콘서트’라는 조그만 문패를 확인하고 마당에 들어서니 골든 리트리버와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이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 잠시 거실에 앉아 기다리면, 오후 8시 정각에 2층 연주회장으로 연결되는 문이 열린다.

연주회장은 평범한 거실이다. 한쪽 벽면의 책꽂이에는 주인장이 평소에 읽는 음악과 문학, 철학에 관한 책들이 빼곡이 꽂혀 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도 따로 없다. 연주자와 적당한 거리에 방석을 놓고 앉으면 그 자리가 바로 객석이다. 연인, 가족, 친구끼리 찾아온 관객은 서로 어깨를 맞대거나 손을 잡고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즐기면 된다.

이 공간이 특별한 무대로 변신하는 것은 튜닝이 끝나고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부터다. 한 곡씩 더해질 때마다 30평 남짓한 공간은 연주자와 관객의 호흡이 엉켜 뜨겁게 달아오른다.


▶“온몸으로 음악을 들어본 적 있나요.”

지난 16일에 있었던 ‘제170회 하우스콘서트’. 브라질 출신의 가수 겸 타악기 주자 발칭유 아나스타시우와 기타리스트 황이현, 피아니스트 박창수의 연주는 좁은 무대를 숨막힐 만큼 뜨겁게 달궜다.

“‘프리뮤직’이란 연주와 동시에 작곡을 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회자의 짤막한 설명 뒤 이어진 피아노와 타악기의 즉흥연주는 강렬한 불협화음과 기묘한 음향,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불규칙한 셈여림으로 시작부터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전해지는 섬세한 음의 질감과 미묘한 감정은 공기의 진동뿐 아니라 마룻바닥을 타고 관객들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공연장의 음향은 “돈을 들여 일부러 만들어 내려고 해도 이렇게 못할 것”이라는 박씨의 말대로 거실이라는 공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관객들의 표정은 마치 감전된 것 같았다. 연주자들도 자신의 음악에 흠뻑 취한 관객들을 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1부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공연장 옆문을 열고 야외 테라스로 나가 차가운 공기에 열기를 식혀야 했다. 이런 풍경은 박씨의 ‘하우스콘서트’에서 매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음악회가 끝난 직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은 분위기는 ‘와인파티’로 이어진다. 관객들은 하우스콘서트의 주최자인 박씨가 준비한 와인과 스낵을 즐기며 연주자들과 가까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와인파티 도중에 즉석연주회가 다시 열리는 경우도 있다. 즉석연주회는 때때로 늦은 밤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이 공간 안의 시간은 그렇게 ‘템포 루바토(곡의 빠르기를 연주자의 감성에 맡겨 임의로 연주토록 하는 것)’로 흐른다. ‘하우스콘서트’가 아니면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이 같은 특별함 때문에 이른바 ‘하콘’의 열렬한 팬이 됐다가 아예 도우미로 나선 이들도 9명이나 된다. 이들은 연주회 당일 현장에서 음악회를 진행하기도 하고, 홈페이지 관리, 연주회 관련 e-메일을 발송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도맡고 있다.


▶높아진 인기 이면에는 남모를 고민도

박씨의 ‘하우스콘서트’는 입소문을 타면서 관객이 크게 늘었다.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적정 관람 인원은 50명가량. 70명을 넘어서면 조금씩 울림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를 훌쩍 넘기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7월에 열린 ‘두 번째 달 Irish trad project BARD’ 콘서트에는 적정 인원의 배가 넘는 관객들이 몰렸고, 지난 9월에 열린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의 듀오 연주회 때는 180명의 관객을 수용하고도 모자라 많은 이들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씨는 “최근에는 비정기적이긴 하더라도 곳곳에서 하우스콘서트가 생겨나 관객이 분산되더라”며 “이렇게 하우스콘서트가 확산되는 것이 진정으로 바라던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관객이 몰리는 공연은 일부. 상당수의 연주회는 비용이 수익보다 많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공연장은 작지만 연주자들이 모두 일류인 데다가 하우스콘서트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따로 기획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1인당 2만원(고등학생 이하는 1만원)의 관람료 수익으로는 연주자 개런티를 주기에도 부족하다. 지난 5년간 적자액이 4000만원에 이르러 몇 번이나 문을 닫을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관객이 아무리 적어도 계획된 음악회를 반드시 하겠다는 다짐과 다른 곳에서 듣지 못한 ‘하우스콘서트’만의 레퍼토리를 들려줘야 한다는 원칙은 굽힐 수 없었다.

박씨는 “수익을 바라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이 큰 게 사실”이라며 “기존 공연들과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의 문화지원금은 물론 기업들의 후원을 받기 어렵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2008년의 ‘하우스콘서트’는

내년 1월부터 하우스콘서트를 찾는 이들은 자신이 감상했던 연주의 실황녹음 음반을 살 수 있다. 주문에 따른 한정 생산방식으로, 지금까지의 있었던 모든 연주를 CD에 담아 판매한다. 전문 음향장비를 동원한 덕에 음질은 전문 레이블 못지 않으며, 실황 음반 특유의 생생한 감동을 담았다. 작은 공연이 더 감동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하우스콘서트를 연 것처럼, 메이저 음반 레이블이 아니어도 좋은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시작하는 작업이다.

아직 내년 연주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모두 확정된 상태다. 올해 있었던 기획공연 ‘바이올린 시리즈’에 이어, 내년에는 김선욱 등 남성 피아니스트 5인이 참여하는‘피아노 시리즈’가 진행될 예정이다. 1월께는 음악과 영상,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인 색다른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하우스콘서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홈페이지(http://freepiano.net)를 방문하면 된다.

김소민 기자(som@heraldm.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


▶하우스 콘서트(House Concert)

말 그대로 집에서 여는 음악회다. ‘살롱콘서트’와도 유사한 개념으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를 일컫기도 한다. 과거 유럽 귀족들이 음악가를 자신의 집에 불러 음악을 감상하던 것에서 유래했으나, 오늘날에는 대규모 공연장에서 다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 주류를 이루면서 자취를 감췄다.

국내에서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하우스콘서트’로는, 박창수씨가 지난 2002년 7월부터 계속해오고 있는 연주회가 거의 유일하다.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02년 5월부터 몇 차례 정재계 인사들을 자택으로 초청해 음악회를 연 적이 있기는 하지만 비공개로 진행됐기 때문에 일반 관객은 접근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