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다이제스트] 2008년 7월호 - 그의 집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
- 등록일2008.07.01
- 작성자박창수
- 조회2710
그의 집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
하우스 콘서트 여는 피아니스트 박창수
5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이 되자 연희동 주택가의 한 2층집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 들기 시작한다. 유난히 불이 밝은 그 집은 바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박창수(44)씨의 집이다. 대문에 영문으로 “하우스 콘서트”라고 적힌 깜찍한 팻말이 붙어있다. 이날은 바로 그의 집에서 2주마다 한번씩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공연이 열리는 2층에서는 그랜드피아노와 함께 아담한 공연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바닥에는 앉아있는 관객들로 북적거린다. 공연 시작 시간인 8시가 다가오니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더 이상 앉을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피아노 주위로 조명이 들어오고 주인장 박창수씨가 앞에 서더니 푸근한 웃음과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로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제 194회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하겠습니다”
하우스 콘서트는 말 그대로 집에서 열리는 음악회다, 지인들끼리 모여 다과와 함께 조촐히 음악회를 여는 형식이다. 그런데 최근 하우스 콘서트가 주목 받는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인들끼리의 사교모임 성격에서 벗어나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열린 성격의 새로운 공연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박씨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그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열린”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해 6년 동안이나 지속해 오면서 하우스 콘서트를 세상에 알리고 그 문화적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가 하우스 콘서트를 처음 꿈꾸었던 것은 서울예고 재학시절의 일이었다. 친구들과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함께 음악 연습을 하곤 했는데 집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집이라는 공간이 지닌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잘 살린다면 그곳 역시 훌륭한 공연장소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 그는 하우스 콘서트의 꿈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공연이 날로 대형화되면서 외적인 면에만 치중하게 되고 참다운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진정한 감동이 존재하는 새로운 공연의 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던 그는 2007년 7월 12일 하우스 콘서트의 첫 무대를 열기에 이른다.
이제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는 6주년을 맞이했고 200회를 향해 가고 있다. 한 달에 2회, 주로 금요일에 공연이 열리고 있으며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다. 정해진 격식 같은 것도 없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공연장 바닥에 앉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공연을 감상하면 그만이다. 관객은 40~50명이 오는 것이 보통인데 200명이 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의 하우스 콘서트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국악과 대중음악, 독립영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졌다.
이 날 194회 공연은 활발한 연주활동으로 각광받고 있는 중견 피아니스트 윤철희씨의 무대였다. 모짜르트의 변주곡 연주로 공연이 시작되고 담백한 피아노 소리가 따뜻한 느낌을 선사한다. 연주자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도 진지하다. 관객들은 교복 입은 청소년들, 아이를 동반한 주부,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하지만 모두들 음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하나같이 눈을 반짝인다.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피아노 소나타로 접어 들면서 분위기는 고조되기 시작한다. 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오는 베토벤 특유의 묵직한 울림이 이색적이다. 손에 닿을듯한 연주자의 모습과 살아있는 피아노 소리에 그 동안 공연장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을 되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날 하우스 콘서트의 백미는 마지막 연주곡인 쇼팽 소나타 3번이었다. 쇼팽의 열정이 살아 숨쉬는 이 작품을 위해 연주자는 건반에 아낌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연주자의 살아있는 표정과 땀방울은 물론 허밍과 거친 숨소리까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러면서 관객은 연주자와 하나가 된다. 마음속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피아노음의 향연에 넋을 잃을 지경이다. 이런 게 바로 하우스 콘서트의 진수가 아닐까 싶다.
하우스 콘서트에 오게 되면 음악의 진짜 매력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고 한다. 대형 공연장에서 열리는 유명 음악가의 공연의 경우 관객들은 그들의 연주 모습만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에 아쉬움을 느끼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하우스 콘서트에는 그러한 아쉬움이 없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작은 공간에서 열리는 만큼 연주자와 동화되기 쉽고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느끼면서 연주자와 하나된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하우스 콘서트에 한 번 와봤다가 그 생생한 감동에 반해 또다시 이 곳을 찾게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우스콘서트 연주는 독백이 아니라 대화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는 다시 말해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교감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의 뛰어난 연주도 중요하겠지만 이러한 교감이야말로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연주자들도 이러한 교감의 체험을 특별하게 생각한다. 사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정식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관객들을 바로 앞에 두고 연주한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관객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우스 콘서트의 공연이 끝나면 조촐한 와인파티도 마련되어 있다. 공연을 함께한 모든 이들이 어우러져 와인 한 잔과 함께 자유롭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공연장 한편에 연주자와 관객 여러 명이 둘러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공연 후에도 이어지는 연주자와 관객, 관객과 관객 사이의 교감 역시 하우스 콘서트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는 6년 동안 200회 가까운 공연을 열어왔다는 점도 의미 있지만, 그 모든 공연 실황을 영상과 함께 녹음해 두었다는 것 역시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뛰어난 성능의 영상, 음향기기를 이용해 실황의 미세한 울림까지 생생하게 잡아낸 녹음들에 대해 그는 큰 자부심을 느낀다. 현재 그는 그 음원들의 음반화 작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서울대 음대 작곡가 출신으로 현대 음악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음악활동과 하우스 콘서트를 병행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던 적도 많았지만 하우스 콘서트에서 행복해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0회 공연 때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할 기념공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공연이냐고 물으니 아직은 비밀이라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하우스 콘서트의 매력은 직접 와본 사람만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공연의 진짜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한 번 찾아가보자. 7월 중에는 박창수씨가 출연하는 공연도 마련되어 있다. 음악가로서 그의 면모가 궁금한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공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