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08년 9월호 - 내 인생의 한 사람
- 등록일2008.08.24
- 작성자박창수
- 조회2315
내 인생의 한 사람
말없이 건넨 열 가지 처방전_박창수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고민과 생각이 많았던 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나이가 들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사십 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그 짐을 짊어지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고민과 생각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아마 내가 작곡이라는 창작 행위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이런 일상은 이어질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힘든 것은 역시 내 주변 사람들이다. 나조차도 이런 자신이 부담스러운데 어찌 다른 누군가에게 이해 받기를 바라겠는가. 때론 오래된 친구조차 고민을 털어놓는 나를 귀찮아 할 때가 있다.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한 편으로는 상대방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김제창 형을 떠올린다. 늘 곁에 있거나 나의 사사로운 일상까지 시시콜콜 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사람도 있다.
이십대 초반 대학에서 처음 만난 제창 형은 마치 삼국지의 관우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당시 오만했던 나였지만 과묵하게 그가 한 번씩 던지는 말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까이 지내면서도 왠지 두려운 선배였던지라 오히려 개인적인 얘기는 나누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참으로 이상한 관계였다.
이십대 후반의 나는 지금도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지독하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음악적으로 하면 할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제창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만나 오랜만에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이미 서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던 우리는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사소한 안부를 주고 받다가 헤어지기 직전에서야 제창 형은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종이 쪼가리를 꺼내 “이거나 읽어봐라” 하며 던져주곤 훌쩍 일어나 가버렸다. 보왕삼매론이라는 글이었다. 그 후 한참 동안 형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보왕삼매론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중생을 크게 교화하였던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염불직지>라는 책 가운데 일부를 엮은 것으로,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열가지 의 지침을 담은 글이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걱정해준 선배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했는데, 어느새 아예 벽에 붙여놓고 매일 한 번씩은 읽어야 하는 경전이 되어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제창형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처음 이 글을 받아 들은 날로부터 몇 년 후에는 <보왕삼매론>이라는 동명의 작품까지 만들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마음이 무거운 날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이제는 제창 형이 던져준 그 글을 나도 가끔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그 때의 형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25년 전엔 형이 처음 들려주었던 진보적인 음악이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면, 지금은 수행의 길을 가느라 음악과는 멀어진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연상인 선배는 아직도 나에게 하대를 하지 않고 있으며 그보다 여섯 살이 어린 후배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혹시나 자신이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보곤 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버팀목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오늘도 내가 음악을, ‘하우스콘서트’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엄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_보왕삼매론 중에서
말없이 건넨 열 가지 처방전_박창수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고민과 생각이 많았던 편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나이가 들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사십 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그 짐을 짊어지고 다니다 보니 이제는 고민과 생각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아마 내가 작곡이라는 창작 행위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이런 일상은 이어질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힘든 것은 역시 내 주변 사람들이다. 나조차도 이런 자신이 부담스러운데 어찌 다른 누군가에게 이해 받기를 바라겠는가. 때론 오래된 친구조차 고민을 털어놓는 나를 귀찮아 할 때가 있다.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한 편으로는 상대방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김제창 형을 떠올린다. 늘 곁에 있거나 나의 사사로운 일상까지 시시콜콜 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사람도 있다.
이십대 초반 대학에서 처음 만난 제창 형은 마치 삼국지의 관우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당시 오만했던 나였지만 과묵하게 그가 한 번씩 던지는 말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가까이 지내면서도 왠지 두려운 선배였던지라 오히려 개인적인 얘기는 나누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참으로 이상한 관계였다.
이십대 후반의 나는 지금도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지독하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음악적으로 하면 할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제창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만나 오랜만에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이미 서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던 우리는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사소한 안부를 주고 받다가 헤어지기 직전에서야 제창 형은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종이 쪼가리를 꺼내 “이거나 읽어봐라” 하며 던져주곤 훌쩍 일어나 가버렸다. 보왕삼매론이라는 글이었다. 그 후 한참 동안 형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보왕삼매론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중생을 크게 교화하였던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염불직지>라는 책 가운데 일부를 엮은 것으로,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열가지 의 지침을 담은 글이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걱정해준 선배의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했는데, 어느새 아예 벽에 붙여놓고 매일 한 번씩은 읽어야 하는 경전이 되어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내가 왜 힘들어하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제창형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처음 이 글을 받아 들은 날로부터 몇 년 후에는 <보왕삼매론>이라는 동명의 작품까지 만들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마음이 무거운 날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이제는 제창 형이 던져준 그 글을 나도 가끔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그 때의 형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25년 전엔 형이 처음 들려주었던 진보적인 음악이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면, 지금은 수행의 길을 가느라 음악과는 멀어진 그의 존재 자체가 내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연상인 선배는 아직도 나에게 하대를 하지 않고 있으며 그보다 여섯 살이 어린 후배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혹시나 자신이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보곤 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버팀목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오늘도 내가 음악을, ‘하우스콘서트’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엄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_보왕삼매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