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아름다운 음악여행(2)
  • 등록일2009.01.03
  • 작성자김미영
  • 조회4533
7시 30분 하콘에 들어서자마자 계단을 따라 길게 늘어선 대열을 보는 순간 어리둥절했습니다.
망설임 없이 내려가서 알아보니  공연장은 사람들로 포화상태였고 이미 공연장의 문은 잠겨있었습니다. 로비에서 화면으로 감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 긴 시간을 달려온 나로서는 그대로 발길을 돌릴 수 가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조건에서라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화면에 의해 감상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로비 소파에 앉아 집에서 텔레비젼으로 음악회 실황중계를 보듯이 눈과 귀를 그 틀에 맞춰놓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다잡았습니다. 연주회는 시작되고 하지만 음향기기의 울림이 커서 음색이 떠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촘촘히 앉아있는 앞 사람 사이로 화면을 읽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차라리 가슴으로 귀기우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후기 작품 중에서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음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는 내가 안쓰럽다고 여겨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마에스트로 정명훈과의 만남, 김대진교수와의 사제지간의 만남, 또 첼리스트 졍명화의 협연에 이숙해 있었습니다. 그런 관념을 일시에 바꾸워 놓을 좋은 기회라는 생각으로 들떠있던 많은 시간들이 아쉽기만 합니다. 김선욱군이 베토벤의 소나타를 어떻게 연주할지가 가장 궁금했었기 때문 입니다.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로비에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 1부에서 보다 좋은 조건으로 화면에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볼륨을 줄여 음향은 그런대로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슈만의 환상곡은 나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곡이었습니다. 슈만의 어린이정경과 환상곡이 같이 녹음된 CD를 찾아 들고 밝은 미소를 지었던 그 시간으로 가봅니다. 안내해 준 아가씨와 함께 기뻐하던 그 날은 행운의 날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집에서의 며칠. 내 가슴과 머리 속은 슈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린이정경의 7 번째 곡인 꿈은 나의 소녀시절을 회상하게 합니다. 슈만의 꿈, 드볼작의 유모레스크,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등 이런 소품들은 들어도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곡이었습니다. 작은 제목을 메모한 노트를 읽어가며 들은 어린이정경은 그 때 그 시절 그리움이 되어 닥아옵니다.

마지악 곡인 슈만의 환상곡은 "실제 환타지한 상상과 열정으로 전체에 걸처 연주하며"라고 쓰인 인터넷 상의 글귀를 떠올리면서 들었습니다. 어느 때는 질풍을  연상케 하는 강한 텃치로 때로는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하지만 유연성은 잃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황홀하고 희열에 넘치는 아름다운 세 번째 악장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공연을 반 쪽의 음악회라고 단정지었던 생각을 지워버리려 합니다. 조금은 주위가 산만하고 살아있는 음으로 들을 수는 없었으나 화면으로나마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열정과 테크닉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였습니다. 아쉬움이 있었기에 다음 연주회에 더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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