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use Concert - Ellipsos Quartour 색소폰 공연을 보고
- 등록일2015.12.07
- 작성자채성은
- 조회1653
낯설다. 낯선 곳에 아는 사람 없이 앉아서 낯선 음악을 들었다. 처음 20분의 연주가 흘러가는 동안은 정말로 몇 가지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난 아무런 조급할 것 없이 여기 앉아 있을 뿐이었다. 꽤나 앞자리였기 때문에 내 뒤통수 너머로 공연을 보고 있을 사람들의 시선이 가끔씩 신경 쓰였지만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보일까 하는 그런 의식이 많이 사라졌나보다. 맨 처음 앞에 나와서 간단히 오늘의 공연을 소개해 주시는 분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은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왔다고 했다. 여하튼 지금쯤이면 뭔가 느껴야 마땅하다는 강박감이 흐려질 때 쯤 첫 순서가 끝이 났다.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을 가졌다.
짧은 탱고곡으로 두 번째 순서가 시작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특히나 가사가 없는 악기음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을 듣는 것은 음악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정말로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예전에 학교에 색소폰 콰르텟 팀이 왔을 때는 내가 아는 사람들 틈에서, 알 만한 노래를 익숙한 장소에서 들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주 흥겹고 시간가는 것이 아까웠는데 오늘은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프랑스 남자 네 명이 연주하는 생전 처음 듣는 곡을 홀로 듣고 있으려니 똑같은 색소폰 사중주인데도 예술이란 걸 받아들이는 나의 감각기관에 이상이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게 될 정도로 담담한 마음뿐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즐거움이 되어주었던 음악은 내게 익숙한 음악,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 어떤 아름다운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음악들이었다. 그런 음악들만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공연 내내 낯선 음악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차가웠던 것을 깨달았다. 나는 원래 그 노래를 모르거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미리 공부하지 못했거나, 가사가 없기 때문에 악기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클래식을 내 수준에서 그저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했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주인공인 앤디 듀프레인이 교도소장이 없는 틈을 타 소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근 뒤 교도소 내 방송으로 모든 죄수들이 듣게끔 축음기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를 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일로 교도소장은 노발대발하고 앤디는 독방에 일주일간 갇히게 된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리는 것 같은 독방을 견디고 나온 그에게 동료 죄수들은 묻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냐고. 독방은 버틸 만했냐고. 그러자 앤디는 말하기를 자기는 독방에서 모차르트와 함께 있었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동료 죄수들은 간수들이 독방에 축음기를 같이 넣어줬냐고 되묻는다. 그 때 앤디가 한 말이 떠오른다. “모차르트는 여기 머리에도 있고, 여기 가슴에도 있습니다. 아무도 내 안에 있는 음악을 빼앗을 수는 없어요.” 앤디의 교도소 친구인 레드는 회상하기를 그 때 그 노래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치 한 마리 새가 그 여인네들의 목소리를 타고 교도소 담장을 넘어와 막혀있는 담을 허무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나에게 오늘 느껴진 음악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한다면 물론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본지 아주 오래된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불현듯 내 머릿속에서 생각난 이유는 그 때 5분도 안 되는 노랫가락 속에서 교도소의 모든 죄수들이 넋을 놓고 그 소리의 근원을 향해 하나가 되었던 그 마음이, 오늘 그 낯설고 무엇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연주를 듣던 내 마음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즐거움을 찾는다. 난 처음에 이 낯선 공연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바로 그 생각하는 과정 자체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아주 깊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공연시간의 대부분이 흘러갔다. 내가 오늘 들은 음악은 지금까지 내가 좋아해오던 음악이 주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특별하다. 내가 다른 음악들을 파악하던 방식-그 노래에 담긴 뜻, 이야기, 내용을 파악하던 것-이 주는 기쁨과 다르게 이런 모든 생각들을 끄집어내었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다. 내가 여태껏 해오던 대로 오늘 내 속에 담겨진 음악을 파헤치려든다면 아마 이 “낯선 즐거움”은 모조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대로 담아두고 싶다.
짧은 탱고곡으로 두 번째 순서가 시작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특히나 가사가 없는 악기음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을 듣는 것은 음악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정말로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예전에 학교에 색소폰 콰르텟 팀이 왔을 때는 내가 아는 사람들 틈에서, 알 만한 노래를 익숙한 장소에서 들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주 흥겹고 시간가는 것이 아까웠는데 오늘은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프랑스 남자 네 명이 연주하는 생전 처음 듣는 곡을 홀로 듣고 있으려니 똑같은 색소폰 사중주인데도 예술이란 걸 받아들이는 나의 감각기관에 이상이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게 될 정도로 담담한 마음뿐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즐거움이 되어주었던 음악은 내게 익숙한 음악,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 어떤 아름다운 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음악들이었다. 그런 음악들만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공연 내내 낯선 음악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차가웠던 것을 깨달았다. 나는 원래 그 노래를 모르거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미리 공부하지 못했거나, 가사가 없기 때문에 악기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클래식을 내 수준에서 그저 재미없는 것으로 치부했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주인공인 앤디 듀프레인이 교도소장이 없는 틈을 타 소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근 뒤 교도소 내 방송으로 모든 죄수들이 듣게끔 축음기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를 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일로 교도소장은 노발대발하고 앤디는 독방에 일주일간 갇히게 된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리는 것 같은 독방을 견디고 나온 그에게 동료 죄수들은 묻는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냐고. 독방은 버틸 만했냐고. 그러자 앤디는 말하기를 자기는 독방에서 모차르트와 함께 있었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동료 죄수들은 간수들이 독방에 축음기를 같이 넣어줬냐고 되묻는다. 그 때 앤디가 한 말이 떠오른다. “모차르트는 여기 머리에도 있고, 여기 가슴에도 있습니다. 아무도 내 안에 있는 음악을 빼앗을 수는 없어요.” 앤디의 교도소 친구인 레드는 회상하기를 그 때 그 노래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치 한 마리 새가 그 여인네들의 목소리를 타고 교도소 담장을 넘어와 막혀있는 담을 허무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나에게 오늘 느껴진 음악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고 한다면 물론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본지 아주 오래된 그 영화의 한 장면이 불현듯 내 머릿속에서 생각난 이유는 그 때 5분도 안 되는 노랫가락 속에서 교도소의 모든 죄수들이 넋을 놓고 그 소리의 근원을 향해 하나가 되었던 그 마음이, 오늘 그 낯설고 무엇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연주를 듣던 내 마음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즐거움을 찾는다. 난 처음에 이 낯선 공연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바로 그 생각하는 과정 자체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아주 깊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공연시간의 대부분이 흘러갔다. 내가 오늘 들은 음악은 지금까지 내가 좋아해오던 음악이 주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특별하다. 내가 다른 음악들을 파악하던 방식-그 노래에 담긴 뜻, 이야기, 내용을 파악하던 것-이 주는 기쁨과 다르게 이런 모든 생각들을 끄집어내었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다. 내가 여태껏 해오던 대로 오늘 내 속에 담겨진 음악을 파헤치려든다면 아마 이 “낯선 즐거움”은 모조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대로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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