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_475회 하콘 관람후기
- 등록일2016.01.26
- 작성자이석희
- 조회1499
오래 전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영국에서 온 타악기 연주자 이블린글레느의 무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너른 무대 위를 자유로이 누비며 다양한 타악기들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그녀는 안타깝게도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모르고 보면 모를 것을, 알고 보자니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애잔하게 아픈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날 그녀는 맨발로 공연을 진행했는데, 그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녀가 가능한한 사실적으로 소리를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었답니다. 온몸으로 소리의 진동을 감지해서 연주하는 그 절박한 심정이 음악에 문외한인 어머님께 전해진 탓인지 공연이 끝난 뒤 어머님은 눈물을 흘리며 "불쌍도 해라, 저 장애의 몸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하고 안타까움을 표하셨지요.
오케스트라나 성악가들의 무대처럼 흔히 볼 수 있고 자주 접하는 공연들은 익숙한 만큼 박수를 많이 받고 쉽게 호응을 얻습니다. 하지만 낯설고 흔치 않은 타악기 연주자들의 세계는 좀 다르리라 짐작을 했던 바 있지요.
얼마 전 성남시향 신년음악회에는 색서폰 연주자가 등장해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는데, 앳된 표정의 색서포니스트는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인 김태현군이었습니다. "본래 색서폰은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로 인정하지 않지만..."하며 소개를 한 금난새 지휘자의 격려에 화답하듯 김군은 나이가 믿기지 않는 노련함과 기교로 관객을 놀라게 했습니다. 구태여 흠이라면 무대를 마치고 관객의 환호에 답하는 인사가 퍽이나 서툴렀다는 정도였으니까요.
어제(1월 25일) 저녁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제 475회 하우스콘서트의 주인공인 하모니시스트 이윤석과 피아니스트 임여은의 무대 역시 예상치 못한 비인기분야의 황홀한 세상을 펼쳐보여 주었습니다. 하모니카로 독주회를 연다는 자체가 생소하였거니와 그 현란한 기교와 세심한 표현력, 피아노와의 완벽한 호흡이 듣는 이의 숨결을 덩달아 막히게 할 정도였습니다.
귀에 익은 피아졸라와 사라사테, 거쉰의 곡에서 확인된 피아노의 세밀하고 힘찬 반주가 물론 좋았지만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하모니카로 그토록 다양하고 풍성한 음색을 풀어낼 줄은 실로 짐작치 못했고 놀라운 발견이었답니다. 전후반 80분 남짓 진행되는 공연 내내 그 힘겨울 들숨과 날숨을 거의 티내지 않고 손바닥에 쏙 감추어질 자그마한 하모니카에 몰입해서 소리로 엮어내는 꽃미남과 미녀의 듀엣 연주, 아! 황홀합니다.
그 밖에도 익숙치 않았지만 Marland의 멕시칸 댄스, Moody의 곡 Spanish Fantasy나 불가리안 웨딩댄스 등 주로 춤곡에 해당하는 곡들이 각각 미묘하게 다른 흥겨움을 담아 연주되는데 각각의 분위기에 맞춰 춤판이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상상을 해보며 감상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습니다. Porter의 곡 제목에 나오는 낯선 단어 Beguine도 나중에 확인해 보니 카리브해지역의 춤곡이라니 이 또한 유쾌한 뒷맛이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연주해준 앵콜곡 <하바나길라>도 가슴에 착 안겨오는 행복한 온기였습니다. 이런 무대를 마주할 때면 항상 열연하는 연주자들에 반해 저는 과연 청중으로서 기본을 갖추고 있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항상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연주자들 앞에서 저는 감사하며 미안한 마음일 것입니다.
숨겨진 진주인듯 차분히, 하지만 열정적으로 연주해 주신 두 분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리고 더 뜨거운 열기로 응답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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