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낚는 그물 (498회 하우스 콘서트 첼로 앙상블 몬티첼로 공연 후기)
  • 등록일2016.08.23
  • 작성자임병걸
  • 조회1885

계절을 낚는 그물



- 첼로 앙상블 몬티첼로의 연주 '피아졸라의 사계'



 



                                                     임병걸 (2016.08.22 )



 



푸른 바다 위



여덟척의 배가 투망을 친다



낮게 울리는 소리



바다 밑바닥 잠자던 봄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빨라지는 배들의 맥박



밀었다 풀었다 끌었다 당겼다  



점점 거세지는 숨소리



시나브로 그물에 걸린 봄



수면으로 떠올라 초록 입김을 뿜고



고기떼들 덩달아 하늘로 솟구친다



은빛 비늘 파닥이는 소리



하늘과 바다에 번지는 파란 여름



팽팽하던 그물들 느슨해지면서



파도는 잠잠해지고



서쪽 하늘엔 붉은 가을이 넘어가고 있다



망망한 바다 하나 가득 소리가 넘치고



만삭의 배들은 그물을 거둬들인다



잡았던 손 풀고 항구로 돌아가는 뱃머리



하얀 겨울이 펄펄 내린다



소리를 미끼로 계절을 낚는 젊은 어부들



선창의 사람들도 두 눈 뜨고 그물에 걸려들어



온몸을 퍼덕인다 



사계절이 순식간에 몸을 훑고 지나간 사람들



손뼉치며 소리 지르는 저편



꼬리 긴 여우 여덟마리



시침 떼고 앉아있다

 



                             @@@ 



 



 



사람들은 저마다 오고 가는 계절을 인지하는 나름의 감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색깔을 눈으로 감지하는 이도 있고, 코끝을 스치는 냄새로 식별하는 이도 있고



살갗으로 느끼는 이도 있고,  계절이 보내오는 소리를 귀로 듣는 이도 있습니다.



 



어제는 음악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한꺼번에 느낀 유쾌한 날이었습니다.



여덟대의 첼로가 건져올린 소리의 그물망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저마다의 소리를 지르면서



내 곁에 다가왔다가는 사라지고 또 다가왔습니다.



 



활화산 같은 남미의 정열을 뿜어내던 탱고 선율이 첼로라는 점잖은 악기에 업힐 때



도대체 어떤 소리가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여덟대의 첼로가 펼쳐놓은 소리의 그물망!  유쾌, 상쾌, 통쾌 였습니다.



 



젊은 여덟명의 연주자들은 나이만큼이나 발랄하게, 열정적으로, 그러다가 나이답지 않게 



묵직하게, 애절하게 첼로를 어루만졌습니다.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 같기만 한 첼로는 아이의 입이 되어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개구장이 소년의 흙묻은 손이 되어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사랑이 막 휘발하는 젊은이의 가슴이 되기고 하고,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의 슬픈 눈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여덟대 첼로만으로 구성된 이 멋진 앙상블은 첼로가 지닌 잠재력과 매력을



한껏 뿜어냈습니다.



 



멀리 바로크 시대를 연 몬테베르디의 경건한 선율에서, 바흐라는 거대한 음악의 호수를 가로질러,



비발디와 오펜바흐의 경쾌함을 싣고  마침내 피아졸라의 탱고 선율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종횡무진하는 여덟척의 돛단배였습니다. 



 



첼로는 분명 입이 달리거나 심장이 뛰는 생명체가 아니지만, 어제의 첼로 앙상블을 들으면서 나는



혹시 이 첼로들이 연주곡을 잘 알고 있는 생명체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연주자가 능숙하게 악기를 다룬다해도 이렇게 폭넓고 변화무쌍한



음색과 조화로운 화성과 멜로디를 낼 수 있을까요?



 



첼로의 철학자라고 불리우는 영국의 첼리스트 이셜리스도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어떤 첼로로 연주하고 있는지 상기하기도 전에



  내 첼로가 그 곡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주자들 간의 호흡도 척척이었습니다.



사실 여덟명의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성부나 멜로디를 따로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요?



중고교 시설 합창대회 연습 때를 떠올려봅니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으면 어느새 다른 성부를 쫓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한 사람인듯, 두사람인 듯 그러다 여덟사람인 듯 수백명인 듯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지고 흩어지는



이 멋진 연주에 객석에서는 감탄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고 나도 더위쯤 아랑곳 없이 박수를



힘껏 쳤습니다.



탱고를 출 줄 알았더라면 뛰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이 젊은 연주자들과 그들의 동반자 첼로가 가는 곳이라면 앞으로 어디든 따라가야겠습니다.



어림없는 일이지만 정말 나도 첼로를 켜 보고 싶습니다.



언감생심이라면 첼로 켜는 공연장에라도 부지런히 드나들고 싶어졌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여름,



시베리아의 만년설을 퍼다 태양의 등짝에 쏟아붓고 싶은 여름,



북유럽의 빙하를 조각내 태양의 눈동자에 집어넣고 싶은 여름,



 



하우스 콘서트에서 들은 첼로 선율로 이 무자비한 더위를 싹 날려버렸습니다.



남은 여름이 두렵지 않습니다.



 



에어콘을 틀고 싶지만 전기료 폭탄이 터질까 두려운 요즘,



돈 한푼 들지 않는 첼로 선율을 대신 들으면 어떨지요?



이보다 더 시원하고 후련한 에어콘이 있을까요?



 



 



                                                                            - 여의도에서 KBS 해설위원 임병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