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9회 하우스콘서트] 마치 코끼리처럼
- 등록일2026.03.11
- 작성자장유진
- 조회32

어느 때보다 북적이는 마룻바닥에서, 공연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작곡가 이하느리가 직접 무대 앞에 나와 작품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이날 연주된 다섯 작품은 stuff와 as if 시리즈가 번갈아 배치되어 있었다.
stuff 시리즈는 구소련의 조립식 패널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했다. 같은 모듈이 반복되는 구조처럼 여러 반복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 음악이라는 설명이었다. 패널식 건물 자체가 이미지적으로 굉장히 삭막하기 때문에 곡 역시 다소 삭막한 인상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에 반해 as if는 이 삭막한 시리즈에서 파생된 작품이라고 했다. 아무리 흥미로운 소리 아이디어가 있어도 stuff의 규칙에 맞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는데, 그 바깥에서 펼쳐 보고 싶었던 소리들이 모여 as if 시리즈가 되었다는 것이다.
as if가 조금 더 음색적으로 다채로운 편이라면, stuff는 그에 비해 더 삭막한 소리를 의도한 작품이라고 하니 두 시리즈를 소리로 비교해 들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Stuff #2A for Mixed Quartet (2024–2025)
ㅡ 강민정(Violin), 박새미로(Cello), 김민욱(Clarinet), 윤혜성(Piano), 이중현(Conductor)
1. Prélude
그러니까… 그야말로 마룻바닥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가 지휘자의 왼손 그리고 양손의 움직임을 기점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이 악기가 아니라 어떤 물체인 채로 여기저기서 말하기 시작했다. 각 악기별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기본적인 ‘현악기’, ‘관악기’, ‘건반악기’의 표현 자체가 없다. 그들 손에 들린 게 전자악기인가 싶은, ‘클래식’ 안에서 매우 흔하게 느껴지던 소리가 없다.
이 악장이 이 시리즈의 첫 번째 방인 걸까. 활을 들고 있는데도 손으로 지판 위를 놀고, 클라리넷은 소리를 치고 빠지듯 던진다. 특히나 피아노, 피아노가 가장 피아노 같지 않았다.
2. Musette
아이고, 2악장을 시작하는 순간 오늘의 지휘자가 피아니스트를 향해 촥-! 하고 손을 펴는데 바로 알았다. 그가 바로 오늘의 흑마법사다. 그렇지 않고서야 피아니스트가 손안에 '무언가'를 들고 건반 표면을 저리 강하게 갉아낼 수 있을까.
첫 번째 방에서 두 번째 방으로 넘어왔다. 1악장의 것보다는 뭔가 바닥에 찍히는, 거침없는 느낌이 있다. 피아니스트가 불시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뭐야, 이런 것까지 악보에 있는 것인가?
지휘자는 네 개의 악기를 조종하고, 피아노는 바닥을 내리찍고 건반 안쪽을 괴롭힌다. 클라리넷은 숨을 잘게 쪼개 내뱉고, 현악기는 긁기 바쁘다. 악기가 물 안에서 숨이라도 쉬나 보다.
3. Rudepoema I
피아니스트가 자리에서 일어나 건반 너머로 몸을 굽히고 오른손으로 피아노의 온갖 잠을 깨운다. 일어나! 일어나! 잠깐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연주의 메인 스팟이 변경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는 현을 문지르고 쓸어 올리며 활로 때리기 바쁘다. 클라리넷은? 여전히 숨 쉬느라 분주하다.
4. Menuet
와중에 들을 만하게 느껴지는 재미난 요소들이 곳곳에 스며든다. 굳이 굳이 표현하자면 비눗방울의 ‘장난기’를 닮은 면모들이 바닥 위로 떠오른다. 왜 듣기 좋은 거지? 하고 의문이 들기 직전에 하마와 해달 캐릭터가 ‘푸데데…’ 하고 ‘세엑-세엑…’ 숨소리를 내며 잠을 자는 장면이 떠올랐다. 바닷마을에서 조개껍질이라도 던져 놀아야 하나.
5. Aria (intermezzo)
소리가 그나마 선으로 그어지는 때가 있다. 내가 아는 ‘클라리넷다운’ 소리를 내는 클라리넷이 오묘하게 나타난다. 첼로가 실 같은 어지러움을 내면, 그걸로 끝이다.
6. Rudepoema II
하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뚜껑 위의 연주다. 이때쯤에서는 도대체 악보에 저 연주법이 어떻게 표기되어 있을지 궁금했고, 연주자께서는 손가락 보험을 드셨는지도 궁금했다.
음악 하는 연주가들을 가만 보면 당장의 소리를 위해서는 도구든 몸이든 아낌없이 내놓는다. 저렇게 악기를 때려도 되는구나. 마룻바닥에서 클래식 난타 공연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클라리넷은 숨으로 때린다.
반복들의 관계를 느껴보려고 했는데, 타악기 공연을 구경하느라 너무 바빠 미처 살피지 못했다.
As if… III for Mixed Quartet (2025)
ㅡ 주윤아(Cello), 김민욱(Clarinet), 김은혜(Percussion), 윤혜성(Piano), 이중현(Conductor)
이 곡이 시작되기 전에 작곡가 이하느리가 나타나 피아노 안쪽을 살피며 조율했다. stuff 시리즈에서 온갖 첫 만남을 가지는 바람에 혹시 이미 연주가 시작된 건가 싶어 의심스럽게 그의 옆모습을 째려봤다. 언제 시작될지 몰라…! (찌릿)
as if를 위해 등장한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 그리고 각종 타악기가 자리에 위치했다. 연주를 위해 악기를 확인하고 점검하는데, 오늘의 연주에 껴도 전혀 지장 없을 자잘한 숨소리, 스쳐 지나감, 툭 튀어 오르는 소리들이 나타났다.
첫 번째 stuff를 한 번 건너왔다고 예상치 못한 소리가 예상한 소리처럼 느껴져 몇 번 몸을 움찔거렸다. 하다못해 휴대폰 떨어지는 소리도, 창밖의 자동차 소음도 자연스러웠으니... 이 곳은 어떤 소리든 이용될 수 있는 위험한 현장이다. 정말 위험해...
지휘자의 시작 신호와 함께 호기로운 ‘장난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듣자마자 미리 들어봤던 곡의 익숙한 도입부가 콱- 머릿속에 박히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 이 곡 왜 아냐?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퍼커셔니스트의 연주 장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기타가 테이블에 누워 있는 것도, 연주자가 그 기타 위에서 유리잔을 이용해 연주하고 있는 것도 나중에야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첼리스트의 활은 어디로 갔나. 체엥거리는 기타, 뚱땅거리는 피아노, 동동거리는 북소리, 깨갈대는 클라리넷, 있는 듯 없는 듯 투명도를 낮춘 첼로까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는 ‘부드럽게’ 들려서 유리잔 안에 갇힌 기분으로 어지럽게 감상했다.
피아노 건반 위에 종이로 만든 뱃모양 같은 물체가 출항된다. 이렇게까지 바다 속으로 꾹꾹 내려앉을 생각은 없었는데. 이 곡에서 제일 눈에 담겼던 건 첼로에 달린 형형색색의 더블클립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고 사람들 사이에서 열심히 저게 ‘더블클립’인가 살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나중에 왜 저 더블클립을 달았는지 여쭤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내향인은 그냥 마음으로 삼켰다.
이유가 있겠지. 동굴 안에 회색 돌멩이가 왜 거기 있느냐고 묻지 않겠다. 첼리스트가 현을 활로 막 때리고 ‘쉬잇’ 소리도 내는데 이유가 어딨나. 받아들여!
As if…… IV for Violin Duo (2026) *세계초연
ㅡ 강민정(Violin), 송화현(Violin)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으로 우쿨렐레를 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자세가 그렇다. 왼손에는 거문고 연주에 필요한 술대를 든 것처럼 각자 펜을 하나씩 들고 있다.
방금 지나간 첼리스트의 ‘쉬잇’이 바이올린 버전으로 나타났다. 발 쿵! 소리까지 함께하고 있음을 잊지 마시라. 중간쯤,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바이올리니스트의 기본 연주 자세를 하고는 ‘허밍’을 했다. 네? 진짜다.
카레를 만들려고 도마 위에서 당근을 썰 때 할 법한 그 정도의 흥얼거림 톤으로 목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악기가 따라간다. 그래, 지금 네 명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허밍이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소리들이 이어졌다. 악보에 어떻게 표기되어 있을지 정말 궁금한 ‘나’들의 연속이었다. 이제 이 곡이 어떤지에 대한 느낌은 중요하지 않겠다. 나는 두 연주자의 얼굴을 외워버렸다. 바이올리니스트는 노래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극한 직업이다.
Stuff #3 for Mixed Sextet (2025)
ㅡ 이상민(Viola), 박새미로(Cello), 조수환(Double Bass), 안용헌(Guitar), 오병철(Bass Flute), 김민욱(Bass Clarinet), 이중현(Conductor)
여기서는 나의 소리 없는 웃음이 하하에서 흐흐…로 바뀌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타가 내 앞에서 가로 방향으로 몸을 뉘인 채 기타리스트의 손가락에 꽂혀 있는 무언가에 긁히고 있지 않은가. 비올라는 또 어떤가. 까닥거리며 숨만 내쉬고 있다.
정중앙의 코끼리를 닮은 악기는 진짜 ‘코끼리’ 소리를 낸다. 이곳은 혹시 사파리입니까? 더블베이스의 조수환 연주자는 지판 위를 거의 내려친다. 저렇게 쳐도 되는 거예요? 진짜로?
아니, 이제 보니 첼리스트는 활이 아니라 연필로 현을 긁고 있다. 오늘 혹시 논술 시험 치는 날입니까? 비올라가 듣기 좋게 ‘찡얼~ 찡얼~’거리는 건 처음 본다.
마룻바닥에서 악기로 하는 정글 쇼를 보다니. 나는 역시 운이 좋다…라고 느끼기 무섭게 소리가 점차 내 졸음보다 무거워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참을 수 없는 무게의 소리가 내려앉았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난 저 방은 안 들어갈 거다. 1월의 신년 음악회 때에는 이곳에 바흐가 있었는데, 오늘은 ‘띠용’이 있다.
듣는 내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건 왜 어지럽지도, 헷갈리지도 않고 그냥- 꿈뻑꿈뻑 듣고 있는 나 자신이다. 난 뭐지?
As if… III (Deluxe) for Mixed Quartet (2026) *세계초연
ㅡ 주윤아(Cello), 김민욱(Clarinet), 김은혜(Percussion), 윤혜성(Keyboard), 이중현(Conductor)
내가 또 유일하게 아는 도입부가 미디 키보드 버전과 퍼커션과 함께 되돌아왔다. 막 정겹게 반가운 건 아니지만 ‘너 왔구나!’ 싶었다. 너는 조금 더 외계인 같아졌네. 더블클립은 여전히 달고 있네. 안 아프니?
클라리넷은 왠지 모르게 아까보다 바빠 보인다. 공중부양하는 해파리들의 수신호 대화인가? 이쯤 되면 오늘의 하콘에는 단체 채팅방을 하나 열어 두고 다 같이 무조건 한 곡마다 느껴지는 감상평을 써 봤어도 좋았겠다.
다들 기타 위에 혹은 건반 위에 물건이 얹히는 순간 무엇을 떠올렸을지 궁금했다. 이 곡에서는 불시에 미래지향적 보랏빛, 파란빛 재즈 카페에 온 듯한 기분을 주는 흐느적임도 있다.
온 세상의 두드림과 내가 기억한 장난감 소방차 소리가 엮여 든다. 기타 현과 유리잔, 다음에 오는 키보드가 기본 건반보다 다정하게 따라붙는다.
이제 몇 곡 들어봤다고 변화구처럼 찾아오는 또 다른 ‘시작’에 처음보다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숨이 까딱-까딱 넘어가는 건 여전하지만, 처음보다 안정적인 걸 보면 적응이란 걸 했나 보다. 흐흐… 그건 그렇고, 아까 Stuff #3의 가운데 너어-너! 코끼리 맞지!
아- 현대음악. 느낌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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