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3회 관람후기
  • 등록일2026.04.15
  • 작성자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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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웠던 지난 1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서초동의 작은 악기점에서 때묻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들어오는 50대 남성을 봤다. 악기 갖다주는 택배 아저씨인가 했는데, 이 분이 바이올린을 꺼내더니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3초가 채 지나기 전에 알 수 있었다. '아, 월드 클래스다!' 이자이, 브람스, 파가니니, 바흐, 시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10여 분간의 연주 내내 나는 경이와 황홀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대가의 연주를 바로 눈 앞에서 혼자 듣다니. 그 분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가시자마자 사장님께 저 분 누구냐고 물어봤다. "김응수 선생님, 한양대에 계시잖아요."
더하우스콘서트 1153회 김응수 바이올린 공연은 가까이에서 연주자의 호흡과 지판에 닿는 손가락의 울림까지 느낄 수 있었던 지난번 악기점 공연의 연장선이었다. 프로그램은 김응수라는 연주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선곡이었다. 바흐나 베토벤은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해서 충실히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기 곡들은 연주자의 느낌, 주관적 표현이 중요하다. 젊은 연주자들의 화려하고 정확한 기교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감정과 색채가 있다. 김응수는 그런 면에서 가장 적합한 예술가였다. 그의 연주에는 단순한 해석을 넘어선, 오랜 시간 축적된 사유와 경험이 배어 있었다. 그의 연주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철학적 고뇌가 음 하나하나에 스며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고뇌가 결코 무겁게만 머물지 않고 희미함과 분명함, 강함과 부드러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리의 영혼을 흔든다는 것이다. 그는 음악을 ‘표현’하기보다, 음악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기다리는 연주자였다.
예전 작은 악기점에서 느꼈던 경이로움과, 더하우스콘서트에서의 깊은 몰입은 결국 같은 지점으로 이어져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들은 그의 바이올린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한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 온 내면의 풍경이었다. 결국 김응수의 바이올린은 질문을 던진다. “이 소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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