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라이 페스티벌, Artist in Focus 3-문지영]
- 등록일2026.07.21
- 작성자김형국
- 조회68
2015년, 부조니 콩쿠르 이후 처음 접하게 된 그녀의 연주는 당시 심사위원장의 평가로 압축할 수 있다.
"이 시대에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음악성의 자연스러움을 그녀에게서 발견했다"
어느 순간부터 일까, 향기처럼 순간에서 영원으로 퍼져나가는 잔잔한 울림과 내면의 충만한 연주
그런 연주보다 화려하고 압도적인 테크닉으로 모든 것이 호불호가 갈려가고, 작품을 가지고 노는(?) 그런 연주자들에만 주목하는 일들이 목격되었다.
그 와중에 2015년 처음 접한 문지영 피아니스트는 달랐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음악을 좋아한다, 몰입한다, 작품을 존중하고 헌신한다!" 라는 느낌.
그렇게 10년을 한결같이 그 음색을, 호흡을, 느낌을 좋아했다. 그것이 정말 음악성의 본질로 느껴졌다.
그리고 2026년 7월, 줄라이 페스티벌 "프랑스의 빛"에서 그녀의 리사이틀에 함께할 수 있었다.
초반부는 드뷔시의 판화 3곡과 두 개의 아라베스크 연주였다.
드뷔시의 곡은 울림의 잔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관객들의 집중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티스트의 영향인지, 정말 관객들 모두 연주에 몰입하여 호흡을 함께 이끌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L.100-3(비 내리는 정원)을 들으며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정말 월드클래스임이 느껴졌다.
또한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 드뷔시를 연주하면서도, 연주자 특유의 열정적 감성이 느껴졌다.
연주라는 것은 일종의 연기를 하는 연기자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문지영 피아니스트는 단연코 확실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연주였다.
후반부는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크라이슬레리아나였다.
아라베스크라는 동일한 곡으로 드뷔시와 슈만을 연결시키려고 했다는 연주자의 말처럼
왜 프랑스의 빛에 슈만이 나왔을까 궁금했던 궁금증도 살짜쿵(?) 해소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드뷔시의 음계를 비트는 몽환적인 모호함과 슈만의 화성진행의 아리송함과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모호함의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뷔쉬가 슈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는 설명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인적으로 크라이슬레리아나가 문지영 피아니스트에 잘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자아가 부딪히는 해당 곡의 해석을 너무나 완벽한 연기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고 난 후의 미니토크나, 연주자와의 개인적인 대화에서는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하지 싶을 정도로 인정 많고 따뜻한 사람 같으면서도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순간의 눈빛과 타건의 강렬함과 예리함은 이런 게 타고난 음악인 임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이렇게 따뜻한 인성의 사람이 돌변할 때 우리는 더욱 강렬하게 느끼지 않나!)
앵콜은 줄라이 페스티벌에 맞게 드뷔시 전주곡 1-8 '아마빛 머리 소녀'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3번 '달빛'을 준비했다.
전반부 곡 보다 대중적이고 잘 아는 곡이어서 그런지 더욱 연주자의 개성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전체적 연주에서 내성의 움직임처럼 섬세한 부분이 잘 들려서 색채가 다채롭게 들렸다. 바흐의 교과서 안드라스 쉬프의 향기가 나는 듯...
모든 것이 편리함과 경제성의 위주로 돌아가며 온라인과 AI로 치환되어가는 세상에서
예술을 온전히 느끼는 라이브 연주는 오히려 19세기 이전만큼 다시 소중한 경험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콘서트하우스의 존재는 유일무이한 소중하고 보석 같은 존재다.
줄라이페스티벌, 24시간 프로젝트 등 끝없이 한계에 도전하고, 예술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또한 청중과 소통하는 노력까지
연주자의 숨결까지 느끼며 대화를 통해 아티스트의 내면까지 읽어볼 수 있는 일반적인 대형 공연 기획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 시대에서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음악성의 자연스러움을 그녀에게서 발견했다"
어느 순간부터 일까, 향기처럼 순간에서 영원으로 퍼져나가는 잔잔한 울림과 내면의 충만한 연주
그런 연주보다 화려하고 압도적인 테크닉으로 모든 것이 호불호가 갈려가고, 작품을 가지고 노는(?) 그런 연주자들에만 주목하는 일들이 목격되었다.
그 와중에 2015년 처음 접한 문지영 피아니스트는 달랐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음악을 좋아한다, 몰입한다, 작품을 존중하고 헌신한다!" 라는 느낌.
그렇게 10년을 한결같이 그 음색을, 호흡을, 느낌을 좋아했다. 그것이 정말 음악성의 본질로 느껴졌다.
그리고 2026년 7월, 줄라이 페스티벌 "프랑스의 빛"에서 그녀의 리사이틀에 함께할 수 있었다.
초반부는 드뷔시의 판화 3곡과 두 개의 아라베스크 연주였다.
드뷔시의 곡은 울림의 잔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관객들의 집중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티스트의 영향인지, 정말 관객들 모두 연주에 몰입하여 호흡을 함께 이끌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L.100-3(비 내리는 정원)을 들으며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섬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정말 월드클래스임이 느껴졌다.
또한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 드뷔시를 연주하면서도, 연주자 특유의 열정적 감성이 느껴졌다.
연주라는 것은 일종의 연기를 하는 연기자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문지영 피아니스트는 단연코 확실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연주였다.
후반부는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크라이슬레리아나였다.
아라베스크라는 동일한 곡으로 드뷔시와 슈만을 연결시키려고 했다는 연주자의 말처럼
왜 프랑스의 빛에 슈만이 나왔을까 궁금했던 궁금증도 살짜쿵(?) 해소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드뷔시의 음계를 비트는 몽환적인 모호함과 슈만의 화성진행의 아리송함과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모호함의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뷔쉬가 슈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라는 설명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인적으로 크라이슬레리아나가 문지영 피아니스트에 잘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자아가 부딪히는 해당 곡의 해석을 너무나 완벽한 연기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주가 끝나고 난 후의 미니토크나, 연주자와의 개인적인 대화에서는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하지 싶을 정도로 인정 많고 따뜻한 사람 같으면서도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순간의 눈빛과 타건의 강렬함과 예리함은 이런 게 타고난 음악인 임을 느끼게 해준다.
(사실 이렇게 따뜻한 인성의 사람이 돌변할 때 우리는 더욱 강렬하게 느끼지 않나!)
앵콜은 줄라이 페스티벌에 맞게 드뷔시 전주곡 1-8 '아마빛 머리 소녀'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3번 '달빛'을 준비했다.
전반부 곡 보다 대중적이고 잘 아는 곡이어서 그런지 더욱 연주자의 개성에 몰입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전체적 연주에서 내성의 움직임처럼 섬세한 부분이 잘 들려서 색채가 다채롭게 들렸다. 바흐의 교과서 안드라스 쉬프의 향기가 나는 듯...
모든 것이 편리함과 경제성의 위주로 돌아가며 온라인과 AI로 치환되어가는 세상에서
예술을 온전히 느끼는 라이브 연주는 오히려 19세기 이전만큼 다시 소중한 경험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콘서트하우스의 존재는 유일무이한 소중하고 보석 같은 존재다.
줄라이페스티벌, 24시간 프로젝트 등 끝없이 한계에 도전하고, 예술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또한 청중과 소통하는 노력까지
연주자의 숨결까지 느끼며 대화를 통해 아티스트의 내면까지 읽어볼 수 있는 일반적인 대형 공연 기획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선물해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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