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제200회 하우스콘서트 | 2008 세미나 : 이어령
일자
2008-09-26
시간
20:00
출연
이어령(전 문화부장관)
장소
연희동 자택 지도보기
관람료
일반 20,000원
문의
02-576-7061, 010-2223-7061
  • 상세정보
  • 예매안내


제200회 하우스콘서트


일    시 ㅣ 2008년 9월 26일(금) 8시
출    연 ㅣ 이어령(전 문화부장관)  

*매년 연말에 열리던 세미나를 이번엔 200회를 맞는 시점에 갖게 됩니다.

*이번 강연은 예약제로 이루어질 예정이며 공연 열흘전인 9월 16일(화) 오전 10시 부터 게시판 공지에 답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PROGRAM



강연 주제: 예술의 공간 찾기


 



PROFILE



이어령(李御寧)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한 후 현재는 석좌교수이다. 그는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명 칼럼리스트로만 활약한 게 아니라 88서울올림픽 때는 개ㆍ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1990~1991년에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저서로는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성의 오솔길』, 『오늘을 사는 세대』, 『차 한 잔의 사상』 등과 평론집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등이 있다.

이 분의 이름 뒤에 어떠한 직함을 붙여야 할까. 문학평론가로 출발한 이래 언론인, 고등학교 교사, 대학교수, 소설가, 극작가, 국문학자, 하이쿠 연구가, 에세이스트, 일본 문화연구가, 문화부장관, 문예지 편집인, 출판인, 올림픽 기획자 등으로 불렸고 현재 <중앙일보>의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는 이어령 선생을 수식할 직함을 정하자니 참으로 난감하다. 어떠한 직함도 이어령 선생을 부연 설명해주지 못한다. 선생이란 호칭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이어령 선생 앞과 뒤에 다른 호칭을 사용하면, 그 호칭을 사용한 분야는 두드러지겠지만, 다른 영역은 가려지는 난점이 있다. 많은 경우 ‘전 문화부장관’으로 표기하고는 있지만, 이 또한 마땅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이름 석 자뿐이다.                                                                               시인 이문재



이어령이 만든 "시대를 바꾼 키워드"
세태를 앞서 읽는 눈과 시대적 선언이야말로 이어령의 전매특허다. 그는 매 10년마다 문명비평가로서 세태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이에 걸맞는 시대적 선언으로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1960년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가난의 극복이 유일의 명제였던 시절에 이 책 <흙속에 저 바람속에>를 통해 우리 사회가 농업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가야 함을 역설하면서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고 어둡던 시대 분위기를 일신하였다.

*1970년대 "신바람 문화"의 제창 군사독재에 눌려 암울과 좌절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의 열정을 깨워 신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 스스로도 몰랐던 한국인의 열정과 힘을 일깨워 자긍심을 높여 주었다.

*1980년대 "벽을 넘어서 올림픽 개폐회식 및 초대형 국가 이벤트를 기획하여 향후의 세계야말로 남북분단과 동서 냉전의 벽을 넘어 진정한 용서와 화합이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 지구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선언은 구 소련의 몰락과 독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통해 현실로 입증되었다.

*1990년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가자" 정보화 시대를 맞아 IT강국을 기반으로 한국이 글로벌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세계와 경쟁하는 문화의 힘과 비전을 강조, 소프트파워를 결집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새 천년의 꿈, 두 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역시 동 시대를 이끄는 슬로건이 되었다.

*2000년대 "디지로그 선언" 세계를 놀라게 하는 파워 코리아의 힘,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문명 융합을 외치는 사자후가 2006년 벽두에 터져 나왔다. 그의 주장은 석학의 생애를 결산하는 것으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며 한국인의 힘을 믿는 놀라운 시대 정신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