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하우스토크 | 이춘희(소리)
  • 등록일2016.03.27
  • 작성자하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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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하우스토크

일시: 2016년 3월 23일(수) 8시 
출연: 이춘희(소리)

이번 하우스토크는 경기민요 명창 이춘희와 함께했습니다. 하우스콘서트 주인장 박창수와 명창 이춘희는 신기하게도 30년 전 옆집에 살았던 이웃지간이었는데요, 실로 오랜만에 하우스토크에서 다시만났습니다. 이춘희는 하톡 내내 소녀처럼 밝은 웃음을 지으며 지나온 이야기를 도란도란 풀어나갔습니다.

이춘희가 처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열일곱 살 때였습니다. 소리가 너무 좋아서 안 배우면 꼭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소리를 쉽게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속앓이를 했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민요가 그렇게 좋았어요. 라디오에서 그 소리만 나오면 완전히 매료돼서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하여간 노래에 정말 미칠 정도였죠. 당시에 국악은 그냥 특정인들이 부르는 소리였거든요, 말하자면 신 같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거지, 누가 마음에 있어서 배워서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당시 시대 분위기와 더불어 부모님의 반대로 이춘희는 쉽게 소리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죽네 사네 하면서 가슴앓이를 했죠. 느닷없이 토하고 화장실에 가고 눕지도 못해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앓았어요. 소리 하는 게 소원인데, 우리 집에선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저 혼자 가슴앓이를 했던 것 같아요.”

결국 이춘희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바람대로 이창배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민요학원에 들어가 소리를 배우게 됩니다. 한편, 타고난 재능으로 일취월장하던 이춘희는 학생 시절 콩쿠르에 나갔다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대회를 나갔는데 너무 떨려서 오죽하면 마칠 때까지 ‘나 여기서 그만하고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런데 당시 대회에서 저보다 더 훌륭한게 잘한 친구가 3등을 하고 제가 2등을 한 거예요. 제가 평소에 선생님들께 ‘잘 한다’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니까 대접하느라 2등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친구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너무 부끄러웠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 떨리고 숨이 찼던 경험을 한 이춘희는 콩쿠르 이후 더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걸 이겨내는 훈련을 했어요.. 발표회를 하자고 생각을 하고, 극장 예약을 한 날부터 1년이 넘게 혹독하게 연습을 했어요. 연습을 하면서 ‘내가 또 그렇게 무대에서 떤다면 그냥 소리를 관두자. 죽느냐 사느냐는 이번 무대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라고 마음을 먹죠.”

이춘희는 혹독한 자기훈련을 통해 비로소 배에 힘이 붙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되었습니다. ‘진짜 소리’를 터득하게 되는 전환점이었던 것이죠. 발전하는 모습에 희열을 느끼면서 연습에 집중한 결과, 이춘희는 이 발표회에서 ‘명창’ 칭호를 받게 됩니다.

이춘희가 경기민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지 약 20년 정도가 되었는데요, 이춘희가 생각하는 경기민요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경기민요의 특징은 예쁜 목소리로 섬세한 멜로디가 야질자질(서울 사투리)하게 나오는 거예요. 말하자면 ‘간드러진다’보다 더 예쁜 표현이죠. 경기민요는 유리알 같이 투명하고 맑은 소리예요.”

이춘희가 하톡 중간에 들려준 정선아리랑과 긴아리랑에서는 꼿꼿한 대나무같이 절도 있다가도, 여린 속살이 살짝 삐져나오는 것 같이 야질자질한 유려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배운다’는 건 상상도 못 할 만큼 힘들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춘희가 어떻게 소리의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춘희의 밝은 모습 한편에서는 뛰어나야지만 성공할 수 있었던 절박함과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서러웠던 기억도 엿볼 수 있었네요. 이춘희가 갈고닦은 기품을 조만간 하우스콘서트에서도 만날 수 있길 바라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