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하우스토크 | 김철웅(Piano)
- 등록일2017.01.13
- 작성자하콘
- 조회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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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회 하우스토크
일시: 2017년 1월 11일(수) 8시
출연: 김철웅(Piano)
“제가 북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는 아닙니다. 저보다 잘 치는 사람 많습니다.”
김철웅에게는 ‘북한에서 온 피아니스트’라는 명칭이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에 탈북을 해, 대한민국에 살아온 지 15년이 넘었지만 ‘북한,’ ‘탈북,’ ‘통일’ 같은 단어들은 마치 ‘벗어나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정체성’ 같다고 합니다.
김철웅은 평양에서 나고 자라 평양국립교향악단 최연소 수석 피아니스트로 발탁되기까지 음악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욕구 때문에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활발한 연주 활동만큼이나 공연 기획 활동과 방송 활동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번 81번째 하우스 토크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김철웅과 북한에서 온 메신저로서의 김철웅의 삶을 고루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연주 외의 다양한 활동으로 피아노 연습에 조금 소홀했다는 김철웅은 작년부터 다시 하루 세 시간씩 매일 연습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야기 내내 좋은 연주에 대한 갈망과 예술가로서의 고민이 보였습니다. 더욱이 북한에서 묵묵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심정이라 그의 어깨가 더 무겁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먹고 사는 일과 가장으로서의 역할까지 동시에 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어떨 땐 내가 피아니스트가 맞나 하는 생각도 해요. 그것(연주 활동)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그걸 소원히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가장 나 자신에게 죄스럽고, 숨고 싶은 그런 문제인 것 같아요.”
한편 북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남북 가곡의 밤’이라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철저하고 깊은 성찰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사회적 활동으로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남한이나 북한이나, 소위 통일교육이라고 하는 것들이 서로 다른 부분들만 가르쳤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같은지를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 힘들긴 하지만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이구나’ 했어요. 북한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명감에서 출발해서 이런 공연 기획을 하게 됐어요.”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탈북인의 자녀들을 모아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싶다는 그의 눈이 반짝입니다. 과연 예술가로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연주만큼이나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 열정적인 김철웅의 이야기는,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탈북인 피아니스트가 아닌, ‘(고향이 북한인)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김철웅.
앞으로 이어질 그의 행보에, 저희도 응원의 마음을 더합니다. ^_^
김철웅에게는 ‘북한에서 온 피아니스트’라는 명칭이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에 탈북을 해, 대한민국에 살아온 지 15년이 넘었지만 ‘북한,’ ‘탈북,’ ‘통일’ 같은 단어들은 마치 ‘벗어나고 싶어도 벗을 수 없는 정체성’ 같다고 합니다.
김철웅은 평양에서 나고 자라 평양국립교향악단 최연소 수석 피아니스트로 발탁되기까지 음악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욕구 때문에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활발한 연주 활동만큼이나 공연 기획 활동과 방송 활동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이번 81번째 하우스 토크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김철웅과 북한에서 온 메신저로서의 김철웅의 삶을 고루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연주 외의 다양한 활동으로 피아노 연습에 조금 소홀했다는 김철웅은 작년부터 다시 하루 세 시간씩 매일 연습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야기 내내 좋은 연주에 대한 갈망과 예술가로서의 고민이 보였습니다. 더욱이 북한에서 묵묵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심정이라 그의 어깨가 더 무겁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먹고 사는 일과 가장으로서의 역할까지 동시에 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어떨 땐 내가 피아니스트가 맞나 하는 생각도 해요. 그것(연주 활동) 때문에 한국에 왔는데, 그걸 소원히 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가장 나 자신에게 죄스럽고, 숨고 싶은 그런 문제인 것 같아요.”
한편 북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남북 가곡의 밤’이라는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철저하고 깊은 성찰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사회적 활동으로까지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동안 남한이나 북한이나, 소위 통일교육이라고 하는 것들이 서로 다른 부분들만 가르쳤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같은지를 음악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 힘들긴 하지만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이구나’ 했어요. 북한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명감에서 출발해서 이런 공연 기획을 하게 됐어요.”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냐는 질문에, 탈북인의 자녀들을 모아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꾸리고 싶다는 그의 눈이 반짝입니다. 과연 예술가로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연주만큼이나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데 열정적인 김철웅의 이야기는,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탈북인 피아니스트가 아닌, ‘(고향이 북한인)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 김철웅.
앞으로 이어질 그의 행보에, 저희도 응원의 마음을 더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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