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회 하우스토크|이샘(PD/공연기획)
- 등록일2017.04.10
- 작성자하콘
- 조회1809

제85회 하우스토크
일시: 2017년 4월 5일(수) 8시
출연: 이샘(PD/공연기획)
85번째 하우스토크는 프로듀서 이샘과 함께 했습니다. 유명 연주자들이 출연할 때 못지 않게 많은 관객이 자리를 메웠습니다. 아마 이샘 PD가 공연기획계에서 하나의 축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궁금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샘 PD는 오늘날의 자신이 있게 된 과정에 대해 묻는 질문에, ‘큰 전환점보다는 우연들에 의해서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원래 그녀는 스튜어디스였고 클래식 음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회사가 제공한 초대권을 계기로 동료들과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게 된 일이 훗날의 작은 씨앗이 되었지요. 좀처럼 접하지 않았던 클래식 공연이 동기들에게는 좋은 수면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간질간질하고도 새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호기심과 묘한 매력에 끌려 휴일마다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음악계에서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열렬히 좋아하고, 또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월간 음악 잡지 몇 권씩을 수 년간 빠짐없이 탐독하였을 정도였고, 그렇게 모르는 음악용어나 작곡가가 없을 정도의 음악적 소양을 쌓게 됩니다.
한편, 이샘은 멋진 승무원으로서 빠른 승진도 하고, 서비스 강사까지 겸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샘은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행기를 타면 이유를 알지도 못하는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승무원 생활을 포함하여 스스로 만족하거나 행복하지 않았기에, 장거리 비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착륙과 동시에 이샘은 사표를 쓰고 승무원 생활을 접었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지만 저는 그런 부분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봐요. (...)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일 년을 보냈고 유일한 낙으로 공연을 많이 보러다녔어요. 그 때 나이 이미 서른, 결혼도 했고, 전공을 살리지도 않았고… 하는 생각으로 지내던 중, 호암아트홀에 붙어있던 하우스매니저 공고를 보고는, 서비스업이니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원을 해보게 되었어요.“
서비스업의 경험과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공연기획분야에 뛰어든지 2년 후에, 목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독립하게 되었고, 올해로 벌써 10년째 목프로덕션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토크 내내 많이 나왔던 단어 중 하나는 ‘우리 아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샘은 연주자들에게 마치 자녀를 대하는 듯한 각별한 애정을 담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연주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 가치관, 인생 전체를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음악적인 소통은 어떨까요? 그녀에게 연주자들과 어떻게 공연을 만들어가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연주자들의 코치가 아니라 서포터에요. 공연을 많이 본 사람으로서, 관객 입장에서의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선을 지키려고 하죠.”
“매니저들 중에 ‘걔 내가 키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 내가 아티스트를 키워요, 아티스트가 우리를 키우는 거에요.”
이샘은 자신을 조연도, 단역도 아닌, ‘무대에 없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연주자를 선택하고, 가장 멋진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낸 대단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철저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요. 연주자의 성공에 자신의 몫을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는 겸손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경험으로부터 얻은 미덕이기에 그런 모습이 더 마음에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이샘은 클래식 업계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보았습니다. 수요는 줄어들고 있고, 그 징후로 음반산업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우스 토크를 마무리하면서 이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을 나누고 싶었어요. 감각이 아닌 영혼의 충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고단하고 힘든 현실과 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뛰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어요.” 그녀가 음악을 통해 느끼는 벅찬 기쁨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이샘 PD는 오늘날의 자신이 있게 된 과정에 대해 묻는 질문에, ‘큰 전환점보다는 우연들에 의해서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원래 그녀는 스튜어디스였고 클래식 음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회사가 제공한 초대권을 계기로 동료들과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게 된 일이 훗날의 작은 씨앗이 되었지요. 좀처럼 접하지 않았던 클래식 공연이 동기들에게는 좋은 수면시간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간질간질하고도 새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호기심과 묘한 매력에 끌려 휴일마다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음악계에서 일을 하겠다는 꿈을 꾸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열렬히 좋아하고, 또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월간 음악 잡지 몇 권씩을 수 년간 빠짐없이 탐독하였을 정도였고, 그렇게 모르는 음악용어나 작곡가가 없을 정도의 음악적 소양을 쌓게 됩니다.
한편, 이샘은 멋진 승무원으로서 빠른 승진도 하고, 서비스 강사까지 겸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샘은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행기를 타면 이유를 알지도 못하는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승무원 생활을 포함하여 스스로 만족하거나 행복하지 않았기에, 장거리 비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착륙과 동시에 이샘은 사표를 쓰고 승무원 생활을 접었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지만 저는 그런 부분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나봐요. (...)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일 년을 보냈고 유일한 낙으로 공연을 많이 보러다녔어요. 그 때 나이 이미 서른, 결혼도 했고, 전공을 살리지도 않았고… 하는 생각으로 지내던 중, 호암아트홀에 붙어있던 하우스매니저 공고를 보고는, 서비스업이니 내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원을 해보게 되었어요.“
서비스업의 경험과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공연기획분야에 뛰어든지 2년 후에, 목프로덕션을 설립하여 독립하게 되었고, 올해로 벌써 10년째 목프로덕션을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토크 내내 많이 나왔던 단어 중 하나는 ‘우리 아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샘은 연주자들에게 마치 자녀를 대하는 듯한 각별한 애정을 담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연주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 가치관, 인생 전체를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음악적인 소통은 어떨까요? 그녀에게 연주자들과 어떻게 공연을 만들어가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연주자들의 코치가 아니라 서포터에요. 공연을 많이 본 사람으로서, 관객 입장에서의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선을 지키려고 하죠.”
“매니저들 중에 ‘걔 내가 키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떻게 내가 아티스트를 키워요, 아티스트가 우리를 키우는 거에요.”
이샘은 자신을 조연도, 단역도 아닌, ‘무대에 없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연주자를 선택하고, 가장 멋진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낸 대단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철저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요. 연주자의 성공에 자신의 몫을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는 겸손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경험으로부터 얻은 미덕이기에 그런 모습이 더 마음에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이샘은 클래식 업계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보았습니다. 수요는 줄어들고 있고, 그 징후로 음반산업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우스 토크를 마무리하면서 이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을 나누고 싶었어요. 감각이 아닌 영혼의 충만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고단하고 힘든 현실과 마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뛰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어요.” 그녀가 음악을 통해 느끼는 벅찬 기쁨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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